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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육십 먹어도 축구하는 여자를 꿈꿉니다
2022-11-30 23:07:46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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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시절에는 선배들의 등을 바라보며 나아갈 길을 더듬는다. 그 시절에는 그들의 등짝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모른다. 모든 게 처음인 내게는 이렇다 할 무기도, 나아갈 길이 분명히 그려진 지도도 없지만, 나를 대신해 먼저 시행착오를 겪은 당신들 덕에 마냥 헤매지만은 않겠구나 싶어서. 든든한 등에다 대고 나직이 중얼거리곤 했다. 고맙다고, 당신들 덕분에 내가 조금은 덜 미끄러지고 있는 중이라고.

신입 시절로부터 10여 년쯤 지났더니 회사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내 위에 있는 임직원보다, 나보다 직급이 낮은 이가 더 많다. 신입인 내게 든든한 등을 보여주던 선배들 가운데 여전히 현역에서 뛰는 이는 드물어졌다. 누구는 유학이나 이민을 떠났고, 누구는 자녀 출생 이후 업계로 돌아오지 못했으며, 누구는 회사에서 밀려나 다른 생업 전선으로 사라졌다.

나는 지금보다 더 경력이 쌓인다면 어디로 가게 될까? 10년 뒤에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잘 상상되지 않는다. 롤모델이 없으니 나의 미래도 두루뭉술해졌다. 이제 나는 '지금 회사에 오래 다닐 거야' 같은 다짐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이제는 안다.

축구를 시작했을 때 수시로 '다시 신입이 된 기분'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헌데 업무에서 신입이던 시절과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바로 '나이'다. 업무에서 신입일 때 나는 20대 중반이었기에, 지금 미숙해도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내심 믿었다. 헌데 축구는 가뜩이나 늦게 시작해서 실력도 미숙한데 나이도 제일 많다. 이 팩트가 하나의 결박이 되어 스스로를 옥죈다.

선배들 등을 보고 살았던 신입 시절

우리 축구팀에서 제일 어린 막내는 고3으로, 올해 열아홉 살이다. 왕언니를 담당하고 있는 나와 스무 살 차이가 난다. 올해 수능을 보네 마네 하는 그 친구를 바라보며 '막내가 내게 이모가 아니라 언니라 불러주어 고맙다, 진짜'라고 생각했다. 내가 첫사랑 오빠와 결혼해 바로 자식 낳았으면 우리 팀 막내와 학교 같이 다녔을 수도 있다.

미성년자에게 출전 자격을 주지 않는 대회 특성상 막내와 한 번도 대회 경기를 같이 뛰지 못했다. 함께하지 못해 서운하지 않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내년에 뛰면 된다고 대답했다. "언니, 저 두 달 지나면 성인이에요." 내년이 와도 고작 스물이라니. 너무 좋겠다. 내 나이 될 때까지 축구해도 20년이나 더 공찰 수 있단 계산이 나오잖아.

축구 친구들이 "이 언니 내년에 마흔이래"라고 놀릴 때마다 나는 "나 생일 안 지났어. 만으로 따지면 서른일곱이야. 대통령이 앞으로 만으로 불러준댔어! 두 살 깎아준다고 그랬어!"라며 항변한다. 물론 통할 리 없다. 친구들 입가는 이미 놀릴 준비로 단단히 씰룩거리고 있으니까. 내 대답에 황소는 "대통령이 언니만 나이 깎아준대? 우리 다 깎아줘"라고 대꾸했다. 알지. 그래도 나이대가 10~30대인 우리 팀이 나 때문에 40대까지 늘어나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럽단 말이야.

나이는 가장 많은데 실력은 제일 바닥인 신입은 도대체 누구를 롤모델 삼아야 하는가. 그림 같은 포물선과 함께 공을 뻥뻥 차대는 축구 친구들을 바라보다 보면 괜히 움츠러든다. "와, 진짜 잘 찬다. 나이스, 나이스!" 외치며 박수를 쳐주지만, 그 모습이 미래의 내 것이 되리라는 기대는 좀처럼 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은 5년이 지나도 '청년'이지만, 그때 나는 어김없는 '중년'이니까. 나이 들수록 노련해진다고 믿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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