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오마이뉴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하리라... 이 작가의 문학론
2024-05-19 14:10:19
김성호
  •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
  • 트위터로 공유하기
  • url 보내기
몇 년 전 제주도 남쪽의 섬, 가파도에 간 일이 있다. 한반도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도 사이에 솟은 가오리 모양의 작은 땅, 이제는 철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 자전거를 타고 땅콩막걸리를 마시며 백패킹을 하는 관광지가 된 섬이다.

친구들과 이 섬을 한 바퀴 휘 도는데 특이하게 생긴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가파도아티스트 인 레지던스'랬나, 실제로는 제법 큰 건물이 일층만 빼꼼 지표 위로 고개를 들고 동남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거센 바닷바람을 피해 한 층만 땅 위에 솟게 지었나 살펴보다보니 문학인과 음악인들이 몇 주, 혹은 몇 달간 머물며 작품을 쓰다가 떠나는 공동생활공간인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 김연수가 있다는 것도.

김연수, 1970년생 작가로 이제는 한국 문단의 중심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이다. <굳빠이 이상> <이토록 평범한 미래> 같은 작품이 널리 읽히며 소설 깨나 읽은 독자들에게 그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복 받은 작가다. 섬세하고 온유하며 감각적인 이야기는 위로며 공감을 필요로 하는 이 시대 독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다채로운 감각을 일깨우고 일면 환상적인 구석도 비치는 특징에 누군가는 그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닮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김연수가 그곳에 머물며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은 외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어느 작가가 작은 섬 가파도의 지하 작업실에서 어떤 소설을 짓고, 그 소설이 마침내 지표 위로, 바다 건너 세상으로 나와 사람들과 만날 것이다. 그가 작은 섬 지하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가 어떤 것일지를 나는 오랫동안 기다렸다.

초단편 포함 스무 편의 소설을 묶었다

<너무나 많은 여름이>는 김연수의 소설집이다. 그저 소설집이라고만 부르기 어색한 것은 통상의 단편들이 묶인 소설집이라기엔 작품 수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무려 스무 편에 달하는데, 짧은 것은 고작 여섯 쪽이나 여덟 쪽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이토록 금세 전개되고 끝나는 짧은 단편은 그리 흔하지가 않은 것이어서 제법 흥미를 갖고 읽게 되었다. 곧 닥쳐올 여름을 미리 맞이하는 심정으로.

작가가 비슷한 시절 배태한 소설 사이엔 얼마간의 공통점이 발견되게 마련이다. 다른 많은 예술이 그러하듯, 소설 역시 작가의 가치관과 관심, 취향 따위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2020년을 전후하여 쏟아낸 일련의 작품군인 <너무나 많은 여름이> 또한 그러하다. 작품과 작품 사이, 주제와 착상, 인물과 분위기 가운데서 맞닿는 부분을 여럿 발견하게 된다.

단편 '젖지 않고 물에 들어가는 법'은 아내를 잃고 난 뒤 새로운 인식에 눈 뜬 유명 코미디언을 어느 연구소 연구원이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일상 가운데 마치 공황장애를 연상케 하는 충격을 받은 코미디언, 그러나 그는 그로부터 현실을 넘어서는 초월적 지각을 경험케 된다. 물이 수소와 원자로, 또 그 입자 대부분이 실은 빈 공간일 뿐임을 지각한 뒤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통상의 인식으론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코미디언의 인터뷰는 자못 진지하고 색다르다. 또 연구원은 일련의 연구를 통하여 팬데믹 뒤 새로운 인식에 눈을 뜬 이들을 여럿 만나본 터다. 코미디언은 조지 오웰의 저 유명한 르포,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예로 들어 말한다. 오웰은 영국 북부의 낙후된 탄광 지역에 두어 달을 머물며 광부들의 실상에 깊이 다가서는 글을 썼다.
전체 내용보기
주요뉴스
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로그인하시면
뉴스조회시 포인트를 얻을수 있습니다.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로그인하기 그냥볼래요
맨 위로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