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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변화에 뒤처진 한국 기업들... 넛크래커 위기
2024-05-09 20:49:16
송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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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정책 칼럼을 연재해 온 공공정책네트워크 넥스트브릿지는 22대 총선과 22대 국회 개원을 맞이해 '22대 국회가 해야 할 과제와 정책제안'을 기획하고 4월부터 6월까지 기획연재를 진행한다.한국 산업과 재생산 구조를 다룬 경남대 양승훈 교수에 이어 전남대 송재도 교수가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과 대안 정책을 제시한다.

저탄소 경제로의 이행을 추구하는 에너지전환은 급격한 기후변화에 따른 삶의 터전의 치명적 파괴를 막고자 하는 노력이며, 필연적인 변화의 방향이다. 세계 경제는 에너지전환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에너지전환은 도덕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국가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너지 정책은 전통적인 산업진흥과 물가 인상 억제 관점에 머무르고 있다. 본 글에서는 산업진흥 정책과 전기요금 이슈를 중심으로 현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이의 개선을 위해 독립적인 에너지 정책기구의 설립이 필요함을 논해보고자 한다.

탄소중립 중심 국제 경제질서 재편

세계 주요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국가 경제정책의 중심에 위치 지으며, 빠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단기적이며 전통적인 산업진흥 관점에서 에너지 문제를 다루어왔는데, 이로 인해 한국의 산업구조 전환은 지체되고 있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8%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유럽연합(EU)과 미국 등이 일찍이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달성하는 탈동조화를 실현해 온 반면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은 2019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이런 상황은 한국 기업들이 원가 우위를 특징으로 하는 빠른 추격형 전략을 유지해 왔으며, 국가 또한 낮은 에너지 가격을 통해 원가 우위를 지원하는 정책을 채택해 왔기 때문이다. 2023년 4월 발표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11.4%(2018년 대비 2030년 목표)로 2021년 10월에 발표된 14.5% 대비 후퇴한 것이었다. 이는 여전히 정부 정책이 에너지전환의 촉진보다는 기업들의 기존 경쟁전략을 용인·옹호하는 온정적 태도를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 지출(3690억 달러)의 84%를 에너지 안보와 기후변화에 할당하여 탄소중립 실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연관 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조건에 자국산 제품·부품 사용 요건, 적정 임금, 견습 요건과 같은 고용 조건을 포함함으로써 자국 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일자리 증대를 추구하고 있다.

EU의 그린딜 패키지에서는 탄소중립 기술과 제품에 대한 EU의 제조 능력 확대, 산업 주도권 확보를 명시적인 목표로 천명하고 있으며, 미국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안보와 양질의 일자리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전체 일자리의 35~40%가 녹색 전환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평가하고 있으며, 양질의 일자리에 필요한 기술 교육과 기술 파트너십 구축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중국, 일본 등도 유사한 정책들을 잇달아 입안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하는 보호무역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국제 경제질서는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다.

탄소중립의 부가가치를 보여주는 세계 배출권 시장의 시가총액은 2022년 8810억 유로(1302조 원)에 달한다. 그러나 배출권 거래제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배출량은 전체 배출량의 17%에 불과하며, 배출권 가격은 탄소배출의 외부성을 반영하기에 아직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계속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배출권 시장의 규모는 이미 매우 크며, 급격히 증대될 것이다.

파리협약을 비롯한 국제 협약들,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ESG(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투자원칙,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에서 보듯이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국제적 압력은 강화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변해가고 있으며, 탄소배출 절감은 가치를 창출하는 수준을 넘어 탄소배출을 수반하는 생산과정, 제품은 아예 시장에서 존재가치를 잃고 말 것이다.

한국 반도체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 대상인 대만 TSMC의 경우 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40%에서 60%로 올렸으며, RE100 달성 시점을 2050년에서 2040년으로 앞당겼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한 삼성전자를 앞지르겠다는 명확한 의지의 표현이다. 현재 글로벌 RE100 가입 기업 415개 중 65%에 해당하는 270개 기업이 2030년까지 RE100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다.

프랑스 정부는 전기차 주요 부품·소재를 제조할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산정해 점수를 매기는 전기차 보조금 최종안을 발표한 바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은 이미 변화에 뒤처져 있다.

한국의 현 상황을 흔히 샌드위치 위기 또는 넛크래커 위기라고 표현한다. 선도자의 위치로 도약하기 어렵고, 추격자들과의 격차를 유지하기 또한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의 모든 국가와 기업들은 선발주자와 후발주자 사이의 샌드위치 위치에 있다. 그 자체가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 상태에서 ①기존 방식을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품질 개선과 원가 우위를 강화하는 방식, ②혁신·선도자로의 변화를 시도할 것인지 선택이 필요하다. 에너지전환에 소극적인 한국의 현 산업정책은 낮은 에너지 가격, 원가우위를 강조하고 있으며, 혁신이 어렵기에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자연스러운 반응에 기대어 있다. 그러나 혁신·선도자로의 변화만이 근본적인 위기의 극복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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