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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선생 뵈러 갔다가 발견한 이름 석 자... 참 씁쓸하다
2024-05-06 18:50:18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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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을 찾았다. 이곳 광주에서 가자면 꼬박 천릿길이다. 아침 먹고 출발해 자정 무렵에 돌아와서 자동차 계기판을 보니 왕복 740km가 찍혔다. 홀로 운전해 오간 먼 길이지만, 힘들기는커녕 약간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었다.

연휴 첫날이어선지 도로는 상하행선을 막론하고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수도권의 사통팔달 거미줄처럼 뚫린 고속도로도 무용지물이었다. 내비게이션이 일러주는 도로마다 온통 빨간색이었다. 출발한 지 6시간 반,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서야 간신히 닿았다.

지난달 타계한 홍세화 선생을 뵈러 가는 중이다. 3년 전 봄꽃이 만개하던 이맘때쯤에도 백기완 선생과 노회찬 전 의원을 뵙기 위해 부러 길을 나섰다. 의지가 나약해지고 마음이 심란해질 때, 내겐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모란공원만 한 '치료제'는 없다.

이소선, 백기완, 김용균... 홍세화 선생 뵈러갔다가 만난 이름들

하늘은 높고 신록은 푸르렀으나 묘역은 을씨년스러울 만큼 썰렁했다. 제초 작업을 하는 관리인 몇 분을 제외하곤 인기척이 없었다. 화사한 봄날 같지 않게 고즈넉했고, 묘역을 통째로 독차지한 느낌이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나부끼는 현수막 소리만이 고요함을 깨웠다.

홍세화 선생의 묘소는 민주열사 묘역 맨 윗자리다. 입구에서 '민주열사 추모비'를 지나 오르면 맨 위 오른편으로 난 길 끝자락에 있다. 서울 올림픽으로 떠들썩했던 1988년, 고작 열다섯 살 나이에 수은 중독으로 숨진 문송면군의 묘소를 길 초입의 이정표로 삼으면 된다.

가다 보면 익숙한 이름들이 여럿 보인다. 유신 독재정권의 종지부를 찍었던 YH 무역 사건 당시 스물한 살 나이로 희생된 김경숙 열사와 지난해 노동절에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에 저항하며 분신한 양회동 열사가 나란히 모셔져 있다. 그들을 위한 '척탄병'을 자처했던 홍세화 선생이 외롭지 않을 듯하다.

그곳에 서면 묘역 전체가 내려다보인다. 왼쪽 너머에는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와 그의 부친 박정기 선생이 잠들어 있고, 아래로는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님, 백기완 선생과 김용균 열사 등의 묘소가 보인다. 그곳이 부채꼴 모양 묘역의 한가운데다.

천릿길을 왔는데, 홍세화 선생만 뵙고 갈 수는 없다. 열사들의 무덤마다 큰절을 올리지는 못한다 해도, 묘비와 안내판을 찬찬히 읽으며 그들의 숭고한 삶을 기릴 수는 있다. 웬만한 축구장 한 개 크기도 못 되는 아담한 곳이지만, 다 돌아보려면 족히 두어 시간은 걸린다.

이번엔 민주열사 묘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한 장기려 박사의 묘소도 알현할 참이다. 6.25 전쟁 중 월남해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와 공공의료 체계 구축에 이바지한 분으로, 행려병자 등 가난한 이웃을 위해 평생 인술을 실천한 참의사로 평가받는다. '한국의 슈바이처'라는 별명이 외람되이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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