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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잎에는 '자리젓'일까죠, '멜젓'일까요
2024-05-05 19:59:30
문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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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 야채 코너에 상추, 깻잎 옆에 '콩잎'이 있다. 콩잎이 나오면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해마다 이맘때만 먹을 수 있는 여리고 부드러운 콩잎에 잘 구운 삼겹살을 싸서 먹으면 기가 막히는 맛이다.

부부싸움을 심하게 한 다음날에 콩잎에 양념한 자리젓을 올리고, 삼겸살을 구우면, 원수같던 남편도 고분고분하게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다. 고소하고 베지근한 맛의 콩잎과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자리젓 그리고 잘 구운 삼겹살을 먹다 보면 부정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금새 행복해진다.


콩잎은 너무 크지 않고 초록색이 선명하게 곱고 만져서 부드러운 것이 좋다. 어린잎이 질기지 않고 연한 것, 꼭지 부분을 만져서 억세지 않고 부드러운 것을 고른다. 콩잎은 세 장이 함께하는데, 똑똑 끊고 겹쳐서 쌈을 싸 먹는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콩잎은 억세지기 때문에 딱 지금만 먹을 수 있다.

얼마 전 저녁에 집에서 가족들과 고기를 먹을 때였다. 아이들은 상추와 깻잎에 쌈을 싸고, 우리 부부는 콩잎을 먹었다. 맛있는 걸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 둘에게 사진을 보냈는데, 느닷없이 카톡이 폭주했다.

"꺄. 맛있겠다."
"언제든 오세요. 고기 준비할게요. 콩잎이랑 자리젓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서귀포 사는 언니가 언제 올라오냐고 물었다. 서귀포에서 제주시에 사는 우리 집에 오려면 한라산을 돌아와야 한다. 특별한 날이 아니면 제주시에 잘 올라오지 않는 언니의 성향을 알고 있는 내가 재차 물었다.

"언니, 정말 괜찮아요? 올라올 수 있겠어요?"
"그럼."


갑자기 저녁 약속이 잡혔다. 장소는 우리 집이었고, 초대 손님은 결혼하기 전에 같이 일했던 언니 두 명이었다. 약속을 잡은 금요일 남편과 아이들에게 이른 저녁을 차려 줬다. 가족들이 저녁을 마칠 때쯤 언니들이 도착했다.

돈만 빼고 다 있었던 25살의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언니들은 버팀목이었고, 나침반이었으며, 가장 든든한 백이었다. 우리는 같은 학원에서 오랫동안 같이 일했다. 두 사람 모두 수학을 가르쳤는데,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한 명은 전형적인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의 모습이다. 안경을 끼고 마른 체형에 깔끔한 옷차림. 항상 50cm짜리 자를 들고 다니며 선을 반듯하게 그렸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고, 칠판에 글씨도 자로 잰 듯 맞춰 썼다.

반면 밝고 환했던 또 다른 수학 선생님은 주름이 풍성한 치마와 원색의 옷을 즐겨 입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 화려한 손톱과 센스 있는 옷차림, 작고 앙증맞게 예쁜 가방. 커다란 귀걸이가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반듯한 언니와 화려한 언니가 대칭을 이뤘고, 내가 밑변이 돼 어울렸다. 일이 힘들 때마다 언니들에게 기댔다. 두 사람은 어떤 날은 싸우고, 어떤 날은 힘을 합쳐 나를 혼내기도 했는데, 언니가 없는 나는 그것도 좋았다.

"콩잎에는 멜젓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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