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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소설 장준하 74] 사찰 등 정치보복 당해
2025-07-01 15:00:59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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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박정희의 행적을 샅샅이 알게 된 장준하의 굴욕외교에 대한 반대투쟁의 집념은 꺾이지 않았다.

그래서 박정희가 추진하는 한일회담을 '매국외교'로 규정하면서 1965년 7월에는 <사상계>의 두 번째 긴급증간호를 발행했다. '신을사조약의 해부'의 특집과 함석헌의 '한국은 어디로 가는가', 백낙준의 '한국의 근대화와 일본침략', 이범석의 '이제 더는 침묵할 수 없다', 박두진·백남수·조지훈의 연작시 '우리는 또 다시 노예일 수 없다', 각계의 한일협정조인 반대성명서, 지식인 115인의 증언 등으로 역시 굴욕회담 반대의 텍스트가 되었다.

이와 같은 장준하의 반대투쟁에 박정권은 <사상계>의 세무사찰이라는 보복수단으로 나왔다. 3월 중순 종로세무서 직원 10명이 회사로 몰려와 모든 장부와 서류를 압류하고 세무사찰을 시작했다. 부당한 권력과 싸우는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장준하도 독재와 싸우면서 공사생활에 한 점 약점이 없도록 처신해 왔다. 빚에 쪼들리면서도 <사상계>와 관련하여 세금도 꼬박꼬박 납부했다. 10일 동안의 세무사찰에도 별다른 불법사실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들은 모두 철수했다.

하지만 <사상계>를 없애고 장준하의 활동에 족쇄를 채우려는 박정권의 복심은 변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서울지방 국세청의 증원부대까지 포함된 20여 명의 세무서원이 들이닥쳤다. 본사는 물론 인쇄소·제본소·지업상· 광고주·지방거래 서적상까지 찾아가 장부와 문서를 대조하는 등 여러날 동안 이잡듯이 뒤졌다. 중정요원들이 뒤에서 조종한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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