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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이 노조 만든 사연, 이 일기에 전부 나옵니다
2025-07-01 06:52:52
최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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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대자보 한번 안 써본 사람이 펜을 드는 마음이란 어떤 걸까. 백지가 망망대해 같지 않았을까. 투쟁 단상에 오르기 위해 떨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냉수를 마시는 아침엔 어땠을까. 가족에게 쉽게 말 꺼낼 수 있었을까. 그런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몇이나 됐을까.

생존을 걸고 노조를 만든 사람들의 시작은 의외로 평범했다. 잘할 수 있을까 자문하다가도 사측과 마주 앉아 의연하게 교섭에 집중했다. 행진이 있는 날, 그는 선두에서 들어야 할 깃대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가진 동료와 은근히 대거리도 나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저녁, 어린이용 큐브를 맞추며 마음을 달래다가 '내가 좋은 지부장이 될 수 있을까' 못내 골똘해진다.

노조를 만든 사람들은 '비상한 행동주의자'라는 편견이 이 책 앞에서 녹아내렸다. 이번에 읽은 업세이(업+에세이의 줄임말로, 일하는 사람이 쓴 에세이)는 민음사 탐구 시리즈 중 하나인 <지부장의 수첩>. 한국어 교육자이자 연세대 어학당 노조를 세운 지부장 최수근의 투쟁 기록이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보람으로 살아온 저자가 쓴 이 책의 특이점은, 바로 '내향인'이 쓴 책이라는 것이다.

키워드 1: 어색함을 감당하는 마음


저자는 고백한다. "상대의 피를 뜨겁게 하는, 느낌표가 이어지는 언성 높은 글을 쓰지 못한다"라고. 내향형 인간 특유의 담담함과 강단의 소유자인 그는 2008년 한국어교육 현장에 뛰어들었다.

어학당에서 처음 가르친 학생은 미얀마에서 벌어진 8888 민주항쟁 후 한국으로 망명한 활동가들. 한국어 선생으로서 갖춰야 할 태도와 윤리를 학생들에게 배우며 그는 가르치는 사람으로 성장해간다. 자신의 직장인 어학당의 근무환경이 극도로 부실하다는 사실 또한 체감한다.

2023년 국립국어원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어교원 자격증 보유자 중 약 6%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전업으로 한다. 연평균 1357만 원이라는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소득 때문이다. 대다수 어학당 한국어 선생들은 투잡을 뛰고, 자격증 보유자 중 약 11%는 그마저 무급 노동을 하는 형편이다.

계약 형태가 불안정해서 단기계약직으로 몇 개월씩 학교를 옮겨 다니는 한국어 선생도 많다. 자격증 발급 형태도 기이한데, 교원자격증은 교육부에서 발급하는데 한국어 교육 자격증은 문체부에서 발급한다.

정부가 한국 문화의 세계화라는 목적에 부합하고자 차별점을 둔 것인데, K-pop, K 드라마 등 세계적으로 부상하는 한국 문화와 달리 한국어 교육의 '교육적' 내실은 바닥 수준이다. 이와 맞물려 한국어 교육 노동자의 고용 구조 또한 정립되지 못한 현실을 저자는 투명하게 내보인다.

한국어 강사의 임금은 시급제처럼 '강의 시간 횟수'로 정해진다. 외국인을 위한 교안을 만드는 강의 준비 시간, 채점 시간은 임금에 포함되지 않는 불합리한 일터에서 저자는 노조 창립 총회를 준비해 간다.

그 틈에서 당신은 귀한 사람이니 희생하지 말라는 동료와 쉽지 않은 센터장과의 면담 등 온갖 갈등과 회한이 그의 일기에 은은하게 스민 바, 이 기록은 2019년 1월 17일부터 2024년 6월 17일까지 이어진다. 지부장 일기들을 본격적으로 꺼내기 전에 해두고 싶은 말이 있다.


이 책은 표지가 귀엽다(!) 추리소설이 실렸을 것 같은 핸드북 크기의 파란 책이 어학당 노조가 27차례 교섭을 해낸 기록이라니. 문학책 특유의 여운이 느껴지는 표지가 여느 노동 에세이 표지와 사뭇 다르다. 맥주를 마시는 거북이의 상반신이 붉은색 삽화로 실려 있어 더더욱. 실로 이 책에는 저자가 퇴근 후 혹은 집회 후 맥주를 사 들고 귀가하는 장면이 여럿 펼쳐진다. 아하, 그래서 맥주를 든 캐릭터가 그려져 있구나. 독자는 어느 순간 설득돼, 지부장의 행적을 콩트 읽듯 뒤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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