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임용시험에 합격했을 때, 내 가슴은 벅찬 설렘으로 가득했다. '이제 나도 아이들과 함께 꿈을 키워가는 교사가 되는구나.' 교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사명감과 책임감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기대는 나를 한껏 들뜨게 했다.
하지만 학교라는 조직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학교마다 다른 분위기, 다른 문화, 다른 규칙은 매번 발령받을 때마다 기대감과 함께 불안감을 안겨줬다. 그럼에도 나는 늘 믿었다. '아이들을 향한 진심이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첫 발령지에서 맞이한 현실은 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새 학기 첫날, 학교에서는 담임 교사들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학부모들에게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A4용지 한 장 가득, 내 휴대전화 번호, 출신 대학, 나이, 교육 경력, 교육관, 그리고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증명사진까지 첨부해야 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이, 교사들의 민감한 정보를 아무렇지 않게 공개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요즘 어떤 공공기관도 직원들의 얼굴과 개인 번호를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데, 왜 교사는 예외가 돼야 하는가.
하지만 그곳의 문화라면, 나 혼자 '불합리하다'라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서류를 제출했다. 빽빽이 적힌 나의 모든 정보와 함께. 그 종이는 교장선생님의 검토를 거쳐 수정과 보완이 이뤄졌고, 첫날, 전 학부모에게 배포됐다. 그 순간, 나는 '나'라는 존재가 학교의 자산도, 사회의 구성원도 아닌, 학부모들의 공공재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시달렸다, 학부모 전화와 문자
그 해, 예상했던 대로 365일 24시간, 나는 학부모들의 다양한 전화와 문자에 시달렸다. 밤 9시, 10시는 기본이었다.
"선생님, 지금 서점인데요. 어떤 문제집 사야 하나요?"
"내일 준비물 가져오라고요? 왜 며칠 전부터 미리 공지 안 했나요?"
어떤 학부모는 술에 취해 전화를 걸어왔고, 어떤 학부모는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 내 카카오톡을 추가하려 했다. 아이들 역시 별다른 경계 없이 아무 때나 게임 초대를 보내왔다.
나는 더 이상 '교사'가 아니었다. 내 시간, 내 삶, 내 감정은 모두 허물어지고 있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교 일과를 마친 뒤에도, 휴대폰은 결코 조용할 틈이 없었다. 진동 소리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경험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했다. 게다가 교사로서의 전문성보다 '얼굴'과 '나이'를 더 궁금해하고 평가하는 무례한 시선도 견뎌야 했다.
"선생님은 너무 어려 보여서 애들 휘어잡을 수 있겠어요?"
"얼굴이 궁금했어요."
"카카오톡 프로필 보니 남자 친구 있으신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