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고도 수도 서울은 천하제일 복지로 선정된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중심으로 골격을 형성했고, 그 자리에서 청와대가 경복궁의 뒤를 이어받아 국가 권력과 치리의 상징이 되었다(새 정부가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다).
대대로 권력의 중심인 대통령 관저 주변부는 언제나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통제구역이었고, 그래서 항상 멀게만 느껴졌던 지역이다. 더욱이 1968년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 청와대 뒷산들은 민간인들이 갈 수 없는 2중3중의 통제구역이었다. 인왕산, 북악산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경계근무를 서는 초소들이 30여 개나 있었다.
이 지역에 대한 개방은 과거의 권위형 정부가 아닌 민주와 실용의 시대로 변화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7년 4월 처음으로 북악산이 개방됐으나 성곽길 루트만 제한된 개방이었다. 김신조 투트로 불리며 41년간 군사통제됐던 북악산 동편 구역이 2010년 2월 27일 처음 개방된 이래 더 이상 개방은 없는 듯했다.
개방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소통과 개방의 취지를 살리겠다"고 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 때이다. 문 대통령 취임 다음날인 2017년 6월 26일 청와대 앞길이 개방됐고, 2018년 인왕산이 전면 개방되면서 그곳의 초소들도 모두 철거됐다.
2020년 10월 31일엔 청와대 뒤편 북악산 북측면 산행을 위한 둘레길이 개방됐다. 2022년 4월 6일 대통령 전용 산책로로 불리던 청와대와 맞닿아 있는 북악산 남측 산책로마저 개방하므로 문 전 대통령이 2017년 대선 후보 당시 인왕산 북악산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던 공약을 완결했다.
반목과 통제의 상징이던 순찰로와 초소, 막사 건물이 개방과 소통을 상징하는 산책로와 쉼터로 탈바꿈한 것은 민주의 시대로 바뀌었음을 증명하는 역사적 상징성이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개방된 인왕산과 북악산의 숲길을 걷는 '민주 숲길'의 탄생이 가능했다.
2018년 인왕산 전면 개방 때 초소들도 모두 철거됐지만, 오직 한 곳 병사들의 거주공간이었던 '인왕3분초'만 역사물로 보전됐었다. 그런데 이곳이 다시 한번 탈바꿈해 2022년 시민의 쉼터로 재탄생했다. 최근까지 일반인 통제구역이던 청와대 뒤 북악산 북측과 남측 숲길을 이어 걸으며 역사적 공간들을 지난다.
50년 이상 통제로 때묻지 않은 원시림을 맛볼 수 있는 것도 이 길의 특징이다. 곳곳에 남은 초소와 통제구역 팻말을 보며 시대의 변화도 실감할 수 있다. 시대를 넘어 민주와 자유의 가치를 향유하는 숲길을 걷는다. 이 일대를 지난 6월 11일과 18일 사이에, 인왕산 구간과 북악산 구간으로 나눠 걸었다.
통제의 상징이던 병사 막사가 시민 쉼터로
출발은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한다. 금천교시장 골목길을 경유해 인왕산을 향해 구부러져 들어간다. 수성동 계곡을 지나 인왕스카이웨이를 만나면 바로 횡단보도를 건너 산길로 접어든다. 한적하고 오븟한 숲길을 걸어 깊은 산속 옹달샘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숲속 인왕산만수천약수터에 도착한다.
이곳부터 잘 설치된 데크 계단을 깔딱고개처럼 오른다. 인왕산 협곡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숲속 전망 쉼터를 지나고, 데크계단이 끝날 때쯤 중종과 단경왕후의 애절한 사랑이 깃든 치마바위를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는 것은 이곳만이 선사하는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