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을 만나 학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다문화'(이주배경) 학생이 점점 늘고 있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특히 도심에서 벗어나 있고 소규모 기업체가 모여있는 공단 지역 학교는 이런 현상이 뚜렷하다. 선생님 한 분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는 '국제학교'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다문화 학생 비율이 전체 학생의 67% 에 이른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베트남·필리핀을 비롯해 일본·중국 등 아시아 국가 비중이 높았지만, 요즘은 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같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국가 출신 아이들 비중이 늘고 있다. 이런 러시아계 학생들은 대개 국내 출생보다 중도 입국한 경우다.
러시아계 아이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굳건하게 형성돼 있다. 아이들은 무리 지어 같이 등·하교 한다. 쉬는 시간이나 방과 후에도 끼리끼리 모여 러시아어로 대화하며 논다. 혼자라면 소통하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우려고 노력하겠지만 가까이 같은 언어를 쓰는 친구, 언니, 오빠(형)가 있으니 절박함이 덜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업 시간 외에는 한국어에 노출되는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저학년 때 한국으로 온 아이들은 한국어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우면 되는데 5, 6학년 때 입국한 아이들은 교과 내용도 복잡해서 어려움이 많다.
학교에서는 이중 언어 강사와 한국어 강사를 채용해 아이들 학습을 돕고 있다. 이중 언어 강사는 5, 6학년 국어, 사회 교과 수업 시간에 투입돼 선생님의 설명을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하는 등 아이들 학습을 돕는다. 한국어 강사는 러시아와 한국어에 능통한 강사를 채용해 교과 외 시간에 한국어 읽기, 쓰기를 지도하고 있다(러시아어 강사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아이들의 한국어 실력이 속도감 있게 향상되려면 가정의 역할도 중요한데, 러시아계 가정의 경우 맞벌이가 많아 한국어를 배우거나 아이들 학습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부족하다. 구태여 한국어를 배우지 않아도 그들만의 공동체가 굳건해 생활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려인의 경우는 생김새도 한국인과 비슷하고 한국어 습득도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지만 양육자가 러시아인일 경우는 어려움이 크다).
말 안 통하는 아이들에게 일부러 말 거는 이유
필자가 일하는 초등학교도 공단 지역과 가까운데,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에서 온 아이들이 다문화 학생의 절반 가까이 된다.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다. 나는 아이들을 만날 때마다 일부러 다가가 말을 건다. 처음에는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같은 인사말만 했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제법 일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이 됐다.
요즘 들어 저학년 몇몇은 말하는 재미를 붙여서 수업을 마치면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내 방으로 찾아온다. 2학년은 아침 맞이 때마다 멀리서 뛰어와 "사랑합니다" 하고 안기기도 해서 친밀함이 남다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