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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민주열사열전 34] 노조운동 초석 김진수 열사
2025-08-30 21:04:29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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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수 열사는 1949년 7월 8일 전북 임실군 성수면에서 가난한 농부에 아들로 태어났다. 지사초등학교에 이어 오수중학을 나와 서당에 다니며 한문공부를 하였다. 어머니의 남다른 학구열에 따라 1966년 경기도 안양으로 옮겨 안양공업고등학교 야간부에 입학했다. 그는 낮에는 타일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소년공이 되었다.

진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노동자를 하나의 부품처럼 취급하는 살벌한 공장 분위기였다. 기계가 돌아가는 한 개인의 시간은 바늘구멍만큼 낼 수 없었고 아무리 용변이 급해도 오전 오후의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잡담은 금지되었고, 자칫 관리자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욕설은 물론 때로는 구타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데가 바로 공장이라는 곳이었다.(주석 1)

그는 타일공장을 그만두고 요꼬학원에 들어갔다. 1960년대 중후반 수출 붐을 타고 스웨터 보세가공업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었다. 3개월 속성과정을 마치고 뚝섬에 있는 요꼬 하청 공장에 들어갔다. 하청에 재하청의 작은 공장이었다. 역시 열악하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기술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견디며 일하였다.

스무 살이 되어 한영섬유공업주식회사에 들어갔다. 하루 15시간 일하는 곳이어서 다니던 학교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잘리는 아픔을 겪었다. 이즈음, 그러니까 1970년 11월 13일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분신한 것이다. 그는 온 몸에 기름을 붓고 불타는 몸으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는 구호를 외치며 쓰러졌다. 그는 숨지면서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부르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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