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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과 남한산 딱 중간, 여길 차지한 세력이 한반도 지배했다
2025-08-18 20:29:56
이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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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서울에 다다른 한강이, 마지막 힘을 다해 이 산에 머리를 세게 부딪는다. 아차산이다. 그리곤 곧장 몸통을 비틀어 휘어나가며, 멀리서부터 싣고 온 고운 흙을 맞은편 벌판에 차곡히 쌓아 올린다.

감입곡류하천이 만들어낸 충적평야다. 백제를 세운 집단은 그 땅을 도읍 삼았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통칭하는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이다. 강은 거기서 갈리고 비옥한 섬 부리도를 떨궜다.
한강 몸통을 비틀어버린 산은 서쪽에 또 다른 벌판과 물줄기를 끼고 있다. 장안평과 중랑천이다.


이 산에 앉은 산성이다. 바로 옆 용마산이 친구처럼 어깨를 걸고, 그 위로 망우산이 나란하다. 왕릉 열 개가 봉긋한 구릉산을 연이었다.

위로 불암산과 수락산이 양주에서 포천으로 잇닿는 길 안내자처럼 우뚝하다. 고구려가 호시탐탐 한성백제를 노리며 남하한 경로와 정확히 일치한다. 475년, 사로잡힌 개로왕이 혹여 이 길로 끌려가진 않았을까?

아차산성 발굴로 익히 알던 역사가 다시 쓰이는 중이다. 역사기록과 발굴 유물이 어느 지점에서 충돌하는 장면이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닐 개연성은 남아 있다. 본시 백제성으로 알았다. 그곳을 고구려가 빼앗았고, 나중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가 고쳐 쌓았다는 게 통설이었다.

하지만 묻힌 유물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553년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의 성으로 규정하는 추세다. 한강 유역을 다스리려 진흥왕이 설치한 '신주(新州)'일까? 아니면 557년에 이름이 바뀌어 604년 진평왕이 재설치했다는 '북한산주(北漢山州)'일까? 대체로 후자로 기울고 있다.


2018년 아차산성에서 발굴된 '북한산성(北漢山城)'이란 명문 기와에 모두가 놀란다. 그간의 가설을 뒤엎은 결정적 단서다. 아차산성 발굴 결과, 백제나 고구려의 어떤 흔적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게 전부일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뫼에, 세상을 놀라게 할 또 다른 유물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피아간 요충지

아차산성을 백제가 쌓았다는 가설은, 이제 전설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함에도 그들의 도읍 하남위례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곳을 소홀히 취급하지 않았을 개연성에 주목한다. 근 5백 년을 지배한 땅 아니던가.

광개토왕은 즉위하자마자 백제 공략에 나선다. 392년 7월 석현성(파주시 파평면 일대)을, 10월에 관미성(오두산성으로 추정)을 함락한다. 찬란하고 강성하던 한성백제의 추락 서막이다. 이후 한강을 따라 이어진 백제 방어체계에 균열이 생긴다.


고구려가 392년부터 야금야금 영토를 넓혀가며 남하한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공격과 방어는 물론 주둔이 가능했던 말 그대로 '보루(堡壘)'다. 보루가 공격 베이스캠프다. 아차산을 중심으로 규모를 갖춘 보루만 20여 곳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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