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좀처럼 자기 생각을 바꾸기 어렵다. 익숙한 것을 벗어나는 일은 두렵고, 자신이 속한 자리를 돌아보는 건 더더욱 어렵다. 지금의 자리, 지금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다른 세상을 꿈꾸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의 이익을 거슬러, 자신이 속한 계급과 질서의 바깥을 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렵고 불편한 응시에서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변화는 단지 외부의 조건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고 그 세계 바깥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한 인간이 전혀 다른 삶의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사유의 방향이 바뀌는 일이자, 자신이 살아온 삶의 전제를 다시 묻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세계를 의심하게 되는가. 전혀 다른 삶의 현실과 마주하며 낯선 이들의 삶을 응시하게 되는 계기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그리고 그러한 내면의 전환은 어떻게 시대를 흔드는 사유로 이어질 수 있는가.
19세기 유럽,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귀족 가문의 딸과 결혼한 젊은 지식인이 있다. 안락한 삶을 누릴 수도 있었던 그는,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 담장 너머를 바라본다. 그가 목격한 것은 굶주린 얼굴과 절망의 표정, 법이라는 이름으로 가난한 이들을 처벌하는 현실. 금세 여기에 시선을 빼앗긴 그는 곧 그 세계를 책으로 써낸다. 바로 <자본>(Das Kapital). 그의 이름은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다.
왜 그는 자신의 배경과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 가난하고 무력한 삶에 그토록 깊이 눈길을 줬을까.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겪으며 전혀 다른 삶의 물음을 품게 됐을까.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한 인간의 내면이 '혁명'적으로 열리는 과정을 마주하게 된다.
이 질문 앞에 오래 머물러온 철학자 고병권은, 이렇듯 마르크스를 다시 만나게 하는 물음을 꺼내든다. "마르크스는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자본>을 썼는가?"
대학 제도 밖에서 연구하고 글을 써온 그는 '읽기의 집'에서는 '집사'로, 노들장애인야학에서는 16년 넘게 교사로 활동해왔다. 그런 그가 마르크스를 다시 소환한 건 단순히 한 사상가를 조명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고병권은 말한다.
"마르크스의 마음을 바꿔놓은 사람들이 있었다. 마르크스로 하여금 자본주의에 '복수'하겠다는 마음을 만든 이들이었다."
여름의 어느 날, 충북 옥천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에서 철학자 고병권씨를 초청한 '마르크스와 자본' 강의가 열렸다. 전국 각지의 마을교육공동체 활동가들이 주최한 자리로, 고병권의 '북클럽 자본' 시리즈(전 12권, 천년의상상 출판)를 함께 읽어온 모임이 수개월의 공부 끝에 직접 기획했다. "마르크스는 누구를 보았는가?"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강연은, 단지 한 철학자의 생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 오늘 우리가 어디에 시선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마르크스가 만난 결정적 장면들
마르크스는 처음부터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있던 인물은 아니다. 독일의 상류 중산층 사회에 속한 그는, 어쩌면 자신의 토대를 지키는 것만으로 평범한 성공을 누릴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왜, 어떻게 자신의 배경과 전혀 다른 가난한 사람, 노동자의 삶을 진심으로 응시하게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