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엄마 조나정'= '중년 김부장'
내 얘기 같아서 눈물나네
현실적으로 그린 평범한 삶
[yeowonnews.com=최치선기자]“이렇게 마흔하고도 한 살의 생일날이 지나간다. 어릴 땐 이쯤 되면 꽤나 멋지게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왜 나는 이뤄 놓은 거 하나 없이 이대로 초라하게 늙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 ▲ '아이 엄마 조나정'= '중년 김부장' © 운영자 |
지난 10일 처음 선보인 TV조선 월화 드라마 ‘다음 생은 없으니까(이하 ‘다음생’)’의 주인공 조나정(배우 김희선)이 생일 밤 혼자 울먹이며 되뇐 말이다. 그녀는 한때 분당 매출 4000만원을 ‘찍으며’ 최고로 잘나가던 홈쇼핑 쇼호스트 출신.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아이들과 열심히 놀아주느라 몸 구석구석은 멍투성이에, 목은 쉴 대로 쉬었다. 옷이 늘어져도, 뭐가 묻어도, 뱃살이 늘어져도, 머리가 헝클어져도 대충…. 아이들 돌보랴 남편 챙기랴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랬던 그녀가 말한다. “다시 일하고 싶다”고. “결혼하고부터는 난 맨날 제자리야. 다른 사람들 다 뛰어가는데 나만 제자리. 하루하루 밀려나는 비참함을 당신이 알아?” 남편(배우 윤박)이 대꾸한다. “누가 반겨줄 줄 알아? 너한텐 일이 허울 좋은 자아실현이겠지만, 나한텐 우리 네 식구 밥그릇이야.”
드라마의 한 장면이었지만, 실제 ‘내 얘기 같아 울었다’는 증언이 각종 커뮤니티 등에 속출했다. 김희선이 연기하는 조나정 외에도, 아이를 갖고 싶지만 관계를 피하고 피규어에 빠져 사는 남편에게 애를 먹는 구주영(한혜진), 세상 쿨한 언니로 남고 싶지만 실제론 연애에 질척대는 이일리(진서연) 등 가감 없이 현실감 있게 진행되는 절친 3인방의 서사는 ‘하이퍼리얼리즘(극사실주의) 드라마’로 불리며 화제를 낳고 있다. 첫 방송 시청률은 1.9%(최고 2.6%) 정도였지만, 공개 직후 13일 기준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의 톱 10 시리즈’ 3위, 네이버 ‘많이 찾는 드라마’ 1위에 올랐다.
최근 젊은 세대부터 중장년까지 흡입하며 큰 인기를 누린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시작으로, 얼마 전 종영한 장류진 작가의 동명 소설 원작인 MBC ‘달까지 가자’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미세하게 그려낸 ‘하이퍼리얼리즘 드라마’가 연이어 선보이고 있다.
중년 가장들의 눈물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JTBC·이하 ‘김 부장 이야기’)‘가 쏙 빼놓았다. 2021년 당시 대기업 직장인이었던 송희구 작가가 블로그에 쓴 글이 화제가 되면서 웹툰과 동명의 소설에 이어 드라마까지 등장했다. 통신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드라마는 25년간 볼꼴 못 볼꼴 다 견디며 일해온 삶에 대해 스스로 “위대하다”고 외치는 중년 직장인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상사에게 골프 예약에 아부는 기본, 상사보다는 싼 가방, 팀원보다는 비싼 가방을 들어야 제맛이다. 완벽한 일상의 균열은 집값 비교부터 시작해, ‘경쟁’에서 밀린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박탈감과 초라함, 그리고 ‘이렇게 살아온 게 과연 맞았나?’라는 실존적 회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종 블로그 등에선 “드라마 ‘미생(2014)’의 사회 초년생 장그래가 악착같이 25년을 내달려 부장을 달았더니 ‘김 부장 이야기’의 주인공 김낙수가 돼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반응이 상당하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적당히 어려움도 부딪히고, 답답하기도 하고, 함께 고민을 풀어줄 친구도 한 명쯤 있는 등 시청자들은 내 주변에서 볼 법한 이야기를 통해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를 확인해 보고 싶어 한다”면서 “일일극이 이미 막장극으로 변질되고, 드라마 역시 빌런 장르물 혹은 판타지 멜로물로 양극화되는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마음의 해법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