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사람에게 이런 표현은 조금 망설여지긴 하지만, 나는 스티브 잡스(1955년~2011년)가 싫다. 싫어하는 것을 넘어, 가끔 그에 대해 일종의 공포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가 만든 스마트폰으로 인류사는 큰 변곡점을 겪었고, 나는 그것을 문명사적 전환으로까지 감지하고 있다.
나는 그 전환이 가져온 일상의 변화들이 맘에 들지 않는다. 기껏 식사를 함께 하면서도 시선은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향하고, 지하철 안에서는 승객 대부분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람들은 걸으면서도, 심지어 자전거를 타면서도 그 기계를 놓지 못한다. 더구나 그 작은 화면 속 타인의 포장된 삶에 비추어 자신을 보고, 끊임없이 열등감을 쌓아가는 그 모습들이 너무도 싫다. 나는 이런 현상 모두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 작은 기계에 의탁해서 생기는 일이라 보고 있다.
도구란 걸 발명한 이후, 인간은 그것을 이용해 스스로 정체성을 강화시켜 왔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온 이후로는 오히려 그 도구로 인해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난 스티브 잡스를 적어도 존경하지 않는다.
그런 내게 '대규모 언어 모델(LLM)' 인공지능 ChatGPT의 등장은 실로 경악할 일이었다. 스마트폰을 넘어서는, 더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존재로 느껴졌다. 드디어 사람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세상이 도래하는 걸까? 이제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결국 터미네이터가 현실화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몇 가지 질문만으로도 녀석은 곧 밑천을 드러냈고, 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역사 관련 질문에, ChatGPT는 정확하지도 않은 답변을, 그것도 거짓말까지 더해 토해냈던 것이다. 아직은 멀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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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안심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인공지능은 대세(大勢)이고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게다가 그 유속까지 몹시 빠르다. 답변의 질은 급속히 개선될 것이고, 사회 시스템에도 수많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었다. 적응해 나가야 한다. 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생존의 문제일 수도 있는 일이다. 이미 중년을 지나고 있는 내가 속한 세대보다, 아직 어리고 젊은이들에게 그 적응은 더 급해 보였다.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 유료버전을 구독하게 했다. 일반 행정업무와 대민업무를 주로 처리하는 곳이다. 젊은 팀원들에게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독려했다. 당장의 생산성 제고나 뛰어난 업무 성과를 노린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루빨리 새로운 물결에 적응하길 바라서였다. 개인적으로 이미 무료 버전을 쓰고들 있었지만, 향상된 성능의 유료 버전에 다들 흥미로워했다.
두어 달이 지나고, 각자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사무실내에서 작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표본수가 너무 작아 별 의미 없는 내용일 수 있으나,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