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끝났다. 이번 여름방학을 앞두고 나는 좀 긴장 상태였다. 남편이 육아휴직 중이기 때문이다. 방학이 시작한다는 건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함께 있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마치 팬데믹 때처럼. 나와 아이들이 함께 하는 방학은 익숙하지만, 남편까지 함께 하는 방학은 익숙지 않아 염려가 됐다. 예민한 남편과 아이들 간의 트러블이 늘어나진 않을까.
24시간 붙어있는 네 식구의 여름방학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려 여름방학 내내 우리 가족은 '집콕'을 했다.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고 있다 보니 당연한 선택이었다. 가끔 바다나 인근의 저렴한 물놀이장을 가고, 마당에 있는 작은 풀장에 물을 받아 아이들이 몸을 담글 수 있게 했다. 여행이 가고 싶으면 직접 가는 대신 여행 예능프로그램을 함께 보고, 새로운 공간으로 건너가고 싶을 땐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다.
우리 가족이 방학 동안 가장 많이 한 건 독서였다. 내 경우 방학 전 몇 달 동안 개인적으로 큰 책임을 지고 몰두해야 하는 일이 있어 독서에 잘 집중하지 못했다. 방학이 시작되고 일도 마무리를 짓고 나니 독서가 간절했다. 그동안 읽지 못한 책들이 산더미였다. 이런저런 책을 빌려와 쌓아두고 읽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방학이다 보니 잘 될지 의문이었다.
사실 독서는 내게 도피처이기도 하다. 여덟 살, 열 살인 아이들과 종일 붙어 있어야 하는 방학이 되면 나만의 시공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아이들과 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인력이라도 작용하는 건지, 내가 어딜 가든 아이들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고 수시로 엄마를 부른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아예 공간을 분리할 수는 없으니 나만의 시공간이 필요할 땐 책을 펼친다.
내가 책을 펼치면 아이들도 따라 책을 읽을 때가 많다. 책을 읽는 건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고 있는 것보다 엄마로서 면이 서는 일이기도 하다. 방학 때는 강한 몰입감을 줄 수 있는 소설책을 주로 고른다. 다른 시공간으로 건너가는 데는 채 1분이 걸리지 않는다. 책은 펼치는 행위만으로 웜홀처럼 시공간을 뛰어넘는 마법을 가능케 한다.
아이들은 만화책을 즐겨 본다. 내 경우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어릴 때 만화책을 마음껏 읽은 적이 없다. 부모님은 만화가 불온서적이라 생각하셨다. 그런 부모님과 살고 있으니 아무리 읽고 싶어도 만화를 빌려볼 수도, 사볼 수도 없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아이들이 무엇을 읽든 반대하지 않는다. 그림책이든 만화책이든 줄글책이든, 수십 번을 반복해 읽은 책이든 처음 읽는 책이든, 자유롭게 읽도록 내버려둔다.
집에서 십 분 거리에는 두 개의 공공도서관이 있다. 아이 학교 도서관까지 합치면 모두 세 개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집에도 책이 있지만 아이들은 빌려온 책을 더 열심히 본다. 남편은 원래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지만 올해 초 육아휴직을 시작한 뒤로 책을 조금씩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책 읽는 아빠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덕분에 우리들의 여름방학은 가족 네 명이 함께 뒹굴뒹굴 책을 읽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새로 빌려온 책이 쌓여 있으면 아이들은 심심해 하지 않는다. 가족 간의 다툼도 줄어든다. 아이들은 바닥 소파 식탁 등 아무 데서나 책을 펼치고 다른 세상으로 건너간다. 실실 웃기도 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몰입하기도 한다. 괜찮은 책이 있으면 내게 추천을 하기도 하고, 두 형제가 같은 책을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