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회 베니스영화제가 어느덧 폐막(현지시각 6일 저녁)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 담당 16년 차가 될 때까지 칸영화제를 일곱 번 다녀왔고, 2019년 영화 <기생충>의 황금종려상 수상 현장과 박찬욱 감독의 감독상 수상 등 한국 영화인들의 활약을 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에 비해 베니스영화제 취재는 처음이었습니다. 1932년에 시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라는 명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침체기가 길었던 것일까요? 칸영화제의 급부상에 사실 흐린눈을 해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경쟁 부문에 진출하면서 2012년 <피에타>(황금사자상)의 영광을 재현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어쩔 수 없이' 출장을 밀어붙이게 됐습니다.
매우 가까웠던 관객과의 '거리'
직접 확인한 베니스영화제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건 영화제와 관객과의 '거리'였습니다. 칸영화제, 아니 당장 현재의 부산국제영화제만 하더라도 영화제의 명성이 올라갈수록 관객과 창작자들과의 거리는 멀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멀찍이서 스타들을 본다거나 철저한 예매 시스템으로 부지런하지 않으면 영화를 보지 못하는 게 하나의 흐름처럼 됐죠.
하지만 베니스영화제는 관객과 매우 가까웠습니다. 프리미어 상영, 그러니까 베니스영화제가 초청해 전 세계 관객에게 공식적으로 첫선을 보이는 상영은 화려한 레드카펫 행사가 있기 마련인데 스타 배우들이 주최 측의 철저한 통제 안에서도 관객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스타들에게 사인을 요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해당 상영 티켓 구매에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하기엔 이릅니다. 각 상영장마다 러시라인(lush line)을 만들어 놓아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줄을 서면, 빈 좌석이 나올 때마다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토영화제 등 다른 유명 영화제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있지만, 영화 상영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출입을 막는 게 일반적인데 베니스에선 좀 달랐습니다. 기자 또한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더 테스터먼트 오브 안 리> 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며 러시라인에 섰다가 상영 후 약 1시간이 지나서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어두운 상영관에 들어가다 넘어지면 어쩌냐고요? 내부 스태프들이 바닥에 불을 비춰주며 자리까지 안내해주는 섬세함은 덤이더군요.
관객과 가까운 영화제라는 다른 증거는 바로 주요 감독과 배우들이 묵는 호텔 주변에 있었습니다. 베니스 리도섬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본섬에서 배를 타고 오는 영화관계자들과 영화제 측이 숙소를 제공하는 영화인들로 붐비기 마련입니다. 특히 주요 감독, 배우들은 리도섬 해변 인근의 엑셀시오르 호텔에서 묵습니다. 재밌는 건 이 호텔과 바로 이어지는 수상 버스 승하차장이 있다는 사실.
그렇기에 열혈 팬들은 엑셀시오르 호텔 정문에 있는 다리 위에서 수상 버스를 타고 들어오는 셀럽들을 보기 위해 삼삼오오 모이기도 합니다. 칸영화제의 칼튼 호텔, 마제스틱 호텔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 협소하고 통제가 심한 칸과 달리 베니스에선 비교적 자유롭게 해당 호텔 주변에 머물며 영화인들을 스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