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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유적으로 남은, '해동성국'이라 불렸던 발해
2024-11-01 11:18:50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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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동북 3성 여행 5일째 목적지는 발해 유적 따라가기다. 학창 시절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이 고구려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세운 나라로 들었다.

역사 탐방에는 나섰지만 막상 발해에 대해 아는 게 부족했다. 그 점은 나뿐만 아니라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유적지 현장을 둘러보고 나서야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한국사에 존재했던 국가 중 가장 큰 영토를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후인 698년, 대조영은 말갈족들을 거느리고 동만주지역에 나라를 세웠다.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연해주 일대에 위치했던 고대 국가이다.

국호는 일반적으로 발해로만 알려져 있으나 일본 외교 문서에서는 '고려'라고 불렀다. 서쪽에서 발호하는 돌궐족들을 진압하기 바쁜 당나라는 하는 수 없어 발해를 인정(705년)한 후 713년에는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었다.

발해의 첫 도읍지 돈화현 동모산

발해의 영토가 가장 크게 확장된 것은 제10대 선왕 무렵이다. 서쪽으로는 랴오허강 유역까지 ,남으로는 대동강까지, 동으로는 연해주와 동해까지 차지했으며 북으로는 헤이룽강을 넘어 천여 리에 달하는 영토를 차지했다.

백두산 관광을 끝낸 일행이 돈화현 동모산을 향해 달리는 동안 도로 주변 산에는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있었다.

마을이 있는 곳 주변에는 끝없이 옥수수밭이 펼쳐졌다.


가을걷이가 안 된 옥수수를 동물 사료로 사용한다고 하니 중국이 전과 달리 얼마나 발전했는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한참을 달려 발해가 첫 도읍지로 삼았다는 돈화현 동모산에 도착했다. 옥수수밭 사이로 차 한 대만 지나갈 수 있는 농로를 따라 산 밑자락에 도착하니 두 개의 비석이 서있었다.

하나는 한글로, 또 다른 하나는 한문으로 적혀있었다. '성산지산성'. '성산으로 지정된 산성'이기 때문에 유물로 보존한다는 의미다.

나지막한 야산에 세워진 동모산 산성은 장애물이 없어 방어에 취약한 지형이다. 동모산성까지 올라갈 시간이 없어 되돌아와 돈화시에 있는 발해 유적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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