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철학을 서울대 박찬국 교수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책,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에서 프롬은 현대인은 자기 자신을 시장에서 매매되는 어떤 물건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경제 시장, 결혼 시장 등에서 성공적으로 '팔리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나의 모든 경험, 생각, 감정, 행동 등을 시장의 요구에 맞추느라 나 자신을 소외시키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도서관 책장에 꽂힌 이 책의 제목 <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프롬>을 보았을 때 반사적으로 이 책을 꺼내 들었다는 건 아마 나 역시 현대인의 불안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반증이었을 것이다. 현대인의 불안이라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식상한 주제이지만 속시원히 해결할 수 있는 명확한 치료법도 없어 평생을 따라다니는 괴로운 질병이기에 간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체 불안의 원인은 무엇일까? 나 자신을 소외시키는 삶이 불안을 불러오는 것일까? 아니면 개인적인 기질이나 성향 차이 때문일까?
에리히 프롬의 이론에 따라 불안의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근대에서 중세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중세사회에서 사람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특정 지위를 부여받았고 이러한 신분질서는 신이 정한 것으로 여져졌기에 사람들은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오히려 안정감과 소속감을 느꼈다.
중세 말기로 오면서 부를 축적한 새로운 계급, 부르주아가 등장하고 농노는 노동자로 대체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원하는 이에게 제공하고 원하는 곳에 거주할 수도 있었다. 이런 사회적인 변화와 함께 '개인주의'가 나타나게 되었고 사람들은 신분의 억압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개인으로 자신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유를 얻었지만 중세의 신분질서가 마련해 주었던 안정감과 소속감을 상실하면서 고독하고 불안해졌다. 프롬의 표현에 따르자면 '도처에 적의가 번득이는 세상에 자신이 홀로 내던져져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고독감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권력과 부, 명예를 추구하게 되었으며 또 다른 권위나 소유에 의지하게 되었다. 나치와 같은 전체주의의 등장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