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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돌담길과 런던의 버킹엄궁전 사이에서
2025-05-24 17:33:52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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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옥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기와지붕 아래서 아인슈페너(오스트리아 빈에서 유래한 커피)를 홀짝이는 커플, 대청마루에 누운 반려견, 그리고 '전통찻집' 간판 아래 와인을 곁들이는 풍경이 펼쳐진다. 전통은 오늘도 '해석 중'이다. 한국의 문화유산은 때론 무대, 때론 배경, 그리고 간혹 '리모델링 대상'이 된다.

반면 영국은? 거기선 돌 하나라도 움직이려면 왕실 허가가 필요해 보인다. 유적지에선 먼지마저 중세산(産)처럼 느껴지고, '이 벤치, 엘리자베스 여왕의 조카가 앉은 적 있음'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기세다. 이쯤 되면 보존을 넘어 거의 숭배 수준이다.

장인 장모가 전에 사시던 집은 1650년대 지은 초가집이었다. 지금 국립 도서관장으로 있는 김희섭 박사가 영국 유학 시절 우리 집에 놀러 와 이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갔다. 17세기에 지은 집이 벽두께는 1미터가 넘는다. 또 당시 사람들 키가 작아서 천장이 아주 낮다. 특히 문지방은 다 낮다. 그래서 그 조심스런 김 박사도 당시 천장이 낮은 이 집에서 문지방에 자주 머리를 부딪혔다.

하여간 자기 집임에도 우리나라 한옥마을처럼 집수리를 맘대로 못 한다. 일일이 정부 기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당연히 초가집 지붕도 바꿀 수 없다. 당시 장인 장모 집은 '문화재 등재주택'(Graded House)으로 정부에 등록되어 있었다.

이 집은 단순한 '주택'이 아니라 국가가 공식적으로 역사적·건축학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해 보호대상으로 지정한 건물을 의미한다. 이 제도를 '등재 문화재 건물'(Listed Building)이라 하며 이들 중 주거용인 경우 '문화재 등재주택'이라고 불린다. 참고로 지금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문화재 등재주택'은 아니지만 120년 전인 1905년에 지은 집이다.

영국과 한국

버킹엄궁 앞 잔디밭에 앉아 샌드위치를 씹다 보면, 문득 '여기가 헨리 8세가 낙마했던 자리 아닐까?' 싶은 착각이 든다. 물론 사실일 리 없다. 하지만 영국은 그런 착각조차도 '역사 체험'으로 연출한다.

성에서 결혼식, 고성 호텔에서 숙박, 펍(선술집)은 빅토리아 시대 간판 그대로 맥주를 판다. 문화재는 박제가 아니라, 호흡하는 공간이다. 셰익스피어 생가, 비틀스 횡단보도, 1823년산 펜스(울타리)까지도 안내판과 함께 '활용'된다.

한국도 문화재를 사랑한다. 단, '손 안 대고는 못 배긴다'. 기와는 남기되 내부는 호텔급. 대청마루엔 LED 조명, 솟을대문 옆엔 무인 키오스크. 궁궐도 예약 시스템만 보면 항공사 예약창 뺨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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