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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 린드그렌 작가가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이야기
2025-05-24 19:21:00
최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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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작품 속에서 이야기를 서술해 나가는 서술자의 위치 즉, '시점'은 독자가 느낄 감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이야기를 전해주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것 같이, 서술자가 주는 특별한 분위기가 작품의 배경이 되어 독자를 맞이하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서술자가 인물 바깥에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을 때 독자는 주인공의 처지를 좀 더 객관적이고 거시적으로 볼 수 있다. 이야기가 가진 세계관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야기의 서술자가 주인공일 때 독자는 좀 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표현을 많이 읽게 되면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서술자가 아이일 때 어린 독자들은 작품에 훨씬 더 몰입한다. 특히 자신과 같은 또래의 주인공을 만나면 공감이 배가 된다.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주인공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서술자가 어린이인 동화를 만났을 때 어른 독자들은 엄마의 마음이 되고 아빠의 마음이 된다. 마음으로 주인공 아이를 다독이고, 어루만지고, 반성하며 좋은 어른의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역시 아이들은 공감하고, 어른들은 고민하게 되는 그런 책이다. 이제는 우리 아동 문학계의 거장이 된 유은실이 이 작품을 쓴 때는 20년 전이다(출간 2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 리커버판이 2025년 1월 출간되었다). 그녀가 쓴 첫 동화책이었다. 헌책방에서 사 모은 40여 권의 린드그렌 동화책이 보물 1호라는 그녀는 아마도 이야기의 주인공 '비읍이'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팍팍한 현실을 책에서 위로 받고, 책을 통해 성장했을 그녀의 어린 시절이 책의 말미에 내밀어 둔 글쓴이의 말을 통해 그려진다. 린드그렌 덕분에 행복했을 비읍이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책침대에서 눕고 자고 행복했을 유은실, 그리고 이 작품을 쓰며 행복했을 어른 유은실, 누가 뭐래도 문학은 행복을 만드는 힘이 있다.

비읍이의 목소리, 비읍이의 마음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의 서술자는 주인공 초등학교 4학년 소녀 '비읍'이다. 이름이 비읍이라니 특이해도 너무 특이하다. 비읍이의 이름은 아빠가 지어주신 것인데, 아빠가 한글을 처음 배웠을 때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아빠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기역에서 미음까지 밖에 몰랐다고 한다. 학교에 들어가서 비로써 비읍 다음을 알게 되고, 그날부터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했다. 그래서 비읍이라는 이름에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준 아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비읍이는 이야기를 전하며 자주 자기 감정을 이야기한다. 특히 사랑하는 린드그렌 선생님께 편지를 쓸 때는 더욱 그렇다. 한국말로 편지를 썼고, 주소도 모르기 때문에 부칠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계속 편지를 쓴다. 편지를 쓰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비읍이의 성장 방식이다.

"린드그렌 선생님, 세상에 책을 산다고 야단 맞는 어린이는 저 뿐일 거예요. 정말 쓸쓸한 일이에요."

자전거 살 돈으로 린드그렌 책을 왕창 사버리는 비읍이를 엄마는 이해할 수가 없다. 비읍이는 또 그런 엄마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해도 이해해 줄 것 같은 린드그렌 선생님이 있기에 비읍이의 하루하루는 다시 평안으로 돌아온다.

"안타깝게도 우리 엄마는 책을 읽어주지 않는답니다. 그렇다고 나쁜 엄마는 아니에요. 아무리 피곤해도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해 주거든요. 우리 엄마는 정말 요리 솜씨가 좋아요."

비읍이는 엄마의 잔소리가 너무 싫고, 린드그렌 책을 못 사게 하는 엄마 때문에 속상하지만 아빠 없이 자신을 키우고 집안을 지켜야 하는 엄마를 이해하는 아이다. 비읍이의 고운 마음이 이야기 곳곳에서 전해진다.

비읍이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고 할머니랑 단 둘이 사는 지혜랑 단짝 친구다. 지혜가 사촌들에게 얻은 너무 큰 운동화를 신고 온 날, 장난꾸러기 지호가 놀리는 말에 이렇게 말한다.

"너, 이게 스웨덴에선 최신 유행인 거 몰라? 린드그렌 선생님 책에 보면 나온다고, 삐삐라는 애는 일부러 큰 신발을 신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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