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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마다 옹기종기 놓인 쓰레기봉투가 던지는 질문
2025-05-24 19:24:32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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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마을 길목을 걷다보면 때때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연두색 종량제봉투. 때로는 홀로 덩그러니, 때로는 무리지어 도로 가장자리와 마을 골목 귀퉁이에 놓여있다. 이렇다 할 표시는 없지만 마을 사람들끼리만 약속처럼 정해진 자리다. 그 곁으로 때로는 얌전히, 또 무질서하게 놓여있는 것은 재활용 가능한 쓰레기들. 이 또한 저마다의 규칙대로다.

1995년 1월 1일부터 쓰레기종량제가 전국적으로 시행된 이후로 '버리는 일'에도 값이 매겨졌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로 높아진 도시의 인구밀도, 그에 따라 늘어난 쓰레기 배출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한 제도다. 쓰레기를 '돈 내고 버림'으로써 책임 있는 배출 습관을 만들고자 한 것인데 도시의 문제에서 시작된 이 제도가 농촌에도 적합했을까?

도시에서는 분리수거함, 전담 인력 등 체계적인 관리 방식이 상식처럼 자리잡았다. 반면 농촌의 상황은 다르다. 인구는 적고 집은 띄엄띄엄. 낮은 인구 밀도와 고령화 속에 '분리수거함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부터 문제다. 무엇보다 쓰레기 역시 '내 손으로 처리하는 것'이라는 자급의 문화가 깊은 이곳에서 제도의 공백은 땅에 묻거나 소각하는 방식을 계속 유지하게 했다.

그러나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 일회용품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이는 다시 농촌의 문제가 됐다. 농촌 쓰레기 처리 정책의 공백은 보건·위생을 넘어 마을 전체의 건강과 안녕을 위협하는 일로 번지기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을은 나름의 방식으로 답을 찾고 있다.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1리와 장연리는 그 두 가지 상반된 사례다.

"쓰레기 분리수거함만 있으면 뭐하나"... 관리인력 필요성 절감한 산계1리


청성면 산계1리, 마을회관 앞 비가림막까지 갖춘 '옥천군 재활용 동네마당'이 설치된 지 4년. 일반쓰레기와 재활용품, 폐건전지·폐전구 등을 분리할 수 있는 시설이지만 지금은 사용을 중단했다. "폐쇄했으니 재활용 및 쓰레기를 갖다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내문까지 붙었다. 누군가 이를 보지 못하기라도 할까 평상과 화분이 그 앞을 막아서기까지 했다.

"4년 전에 설치해서 2년쯤 쓰다가, 감당이 안 돼서 폐쇄했어요. 수거함이 방치돼 있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요. 내후년이면 여기에 경로당을 증축할 계획인데, 애써서 설치한 거 버리자니 또 아깝고 갖고 있자니 골칫덩이고..."

마을 앞 정자에서 만난 산계1리 전형도 이장은 분리수거함 이야기에 한숨을 내쉰다. 2021년, 부푼 꿈을 안고 옥천군 재활용 동네마당 지원사업으로 설치했던 시설. 청성면에서는 처음으로 설치한 것이었기에 인근 주민들도 관심이 많았다. 초반에는 주민들을 모아놓고 쓰레기 배출 교육을 진행하며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쓰레기 분리수거함이 생기면 마을 경관도 좀 더 깔끔해지고, 주민들도 쓰레기 버리기가 좀 더 수월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 제대로 운영이 어렵더라고."

산계1리 마을주민뿐 아니라 청성면 다른 마을, 심지어는 인근 지역에서도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한 것. 면소재지이자 다른 지역으로 가는 길목인 산계1리이기에 더욱 그랬다. 대충 버린 쓰레기는 이곳을 말 그대로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청성슈퍼 앞에서 만난 주민들은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외지에서 차를 타고 와서는, 쓰레기를 그냥 던져놓고 가기도 했어요. 종량제봉투에도 안 넣고 그냥 버리고 가고..." - 박용보씨, 87세

한번 분리수거함이 무질서해지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외지 사람뿐 아니라 동네 주민들도 이곳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일이 잦아졌고 마을 내부 분란으로 이어질 법한 순간도 많았다.

"CCTV를 설치해서 누가 쓰레기를 무단투기 했는지 살펴보고, 마을 방송으로 '무단투기한 쓰레기 되찾아가시라'고 안내를 하기도 했어요. 이것 때문에 감정 상한 주민들이 생기고, 이장으로서도 참 어려웠죠.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마을 이장이 청소부가 돼버리는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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