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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6건"... 밥을 마시듯 먹어야 하는 이들의 하루
2024-11-01 21:41:26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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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오늘 일정을 열어본다. 회사 시스템 속 타스크(설치수리기사의 시스템에 배정된 업무 배정 단위, 한 집 방문 소요 시간을 말함)가 빼곡하다. 우리에게는 10년 넘은 루틴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닌데, 고객과의 약속 시간을 지키려다 보니 시간 활용을 잘해야 했다. 하루의 동선을 짜고 무리한 일정은 없는지 필요한 장비는 무엇인지를 확인한다.

통상 한 시간 단위로 한집, 한집 다녀야 하는데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일이 밀리기 시작하면 다음 집부터는 늦어서 죄송하단 말을 해야 한다. 어쩌면 망가질지 모르는 고객 만족도를 위해 안 해도 될 고객의 집안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빠르게 이동하고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마무리해서 여유 시간을 만들어 언제 생길지 모르는 변수의 시간을 메우며 일을 해왔다. 이렇게 우리는 몸이 기억하는 메뉴얼을 만들어서 일을 해왔다.

1년 만에 40% 이상 증가한 일일 목표 건수

우리의 일은 고객의 집에 방문하여 유플러스의 인터넷과 IPTV, IoT(사물인터넷)를 설치하고 A/S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주택인지 아파트인지, 배정된 고객의 집 간의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 상품의 종류와 고객의 집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고객이 어떤 상품을 어디에 설치하기를 원하는지 등에 따라 우리의 업무 소요 시간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가정집에 인터넷과 IPTV 한 대를 설치하는 업무라 하더라도, 고객이 계약한 인터넷 속도에 따라, IPTV 설치 위치에 따라, 고객의 요구사항에 따라 설치 시간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지역 특성도 작동한다. 내가 담당하는 지역은 내비게이션도 없이 다니는 현장 기사들과 스케줄을 잡아주는 스케줄 매니저의 역할이 크다.

그래서 2015년 5월 노동조합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진 단체협약 제16조 2항에는 "회사는 조합원의 업무를 배정할 때 작업 소요 시간, 작업 간 이동시간, 근로 강도 및 근로 시간 등을 고려해 적정 업무량을 부과하도록 한다"라는 합의 문구가 있다.

최근 들어 이러한 역사나 단체협약이 지켜지지 않는 일이 일상다반사다. 2023년 1월, 대표가 바뀌면서 회사에서 하루 목표 처리 건수를 정했고, 이는 노동자들에게 압박이 되었다. 노동자들의 업무 루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구역별 담당 관리자들 사이에 경쟁이 붙어, 처음엔 3.5건으로 시작해서 1년도 안 된 현재는 일일 6건이라는 목표가 세워지면서 풀지 못할 만큼의 감정싸움이 시작되었다.

신도시가 있는 지역은 이사 물량이 많아서 일이 많고, 인구가 적은 소멸위험 지역이라면 고객 집 간 거리가 멀어 이동시간이 길지만, 물량 자체는 많지 않다. 일이 많은 지역과 없는 지역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건수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기사에게 전가됐다. 회사는 아니라고 말하지만, 현장에서는 실장이나 팀장 등 관리자들이 회사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 편법은 다반사이며 LG유플러스의 정신인 '정도 경영'을 위반해 가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건수를 꾸역꾸역 맞추어 갔다. 이에 따르는 고통은 기사나 스케줄 매니저들이 감당하고 있다.

증가한 시간 압박 속 매우 높아진 사고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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