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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싸움 그 뒤... 묵향 맡을 때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된다
2025-05-14 16:04:54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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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은 나를 꽤나 점잖고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겉모습과는 달리, 내 안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에도 거세게 일렁이는 파도가 늘 숨어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책과 씨름하며 작가이자 편집자로 살아왔고, 마음 공부에도 적잖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자부했지만, 예순 중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현듯 격렬한 감정에 휩싸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여전히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고요했던 어느 주말 아침, 쨍-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고, 뒤이어 아내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

"에구머니나!"

아내가 그릇을 떨어뜨린 모양이다. 당황한 듯 떨리는 아내의 목소리에, 내 안의 평온했던 호수에도 작은 돌멩이가 던져진 듯 순간적으로 격렬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산산이 깨진 유리 조각들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어휴, 또야!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살아?"라는 날 선 말이 튀어나왔다.

예기치 않은 감정의 파도, 내가 듣기에도 매정한 내 목소리


산산이 부서진 유리 그릇 조각들과 망연자실한 아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즉각 날 선 반응을 보이는 아내. 순식간에 싸늘한 침묵이 주방을 감쌌다. 부부 사이의 감정은 때론 날카로운 칼날과 같아서, 아주 사소한 일에도 깊은 상처를 남기곤 한다.

특히 오랜 세월 함께해 온 관계일수록,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예상치 못한 깊은 흉터를 남기기도 한다. 알뜰살뜰 살림을 꾸려온 아내의 작은 실수 앞에서조차, 순간적으로 쏘아붙인 나의 짜증 섞인 목소리는 내가 듣기에도 매정했다. 아차 싶었다.

'그동안 쌓아온 마음 수련의 깊이가 고작 이 정도였던가?'

스스로에 대한 깊은 실망감이 밀려왔다. 이미 뱉어진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 그 짧은 순간의 분노가 얼마나 덧없고 어리석은 감정이었는지 곱씹었다.

"내가 그깟 일로, 말이 심했네요. 화내서 미안해요."

나지막한 사과를 건네고 서둘러 아내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오랜 세월의 경험칙이다. 잘못했을 때는 최대한 빨리 군말 없이 사과하고,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가끔 혼자 산중을 거닐며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곧 무위자연의 꿈을 꾼다. 세속의 명리보다 도가풍의 사상을 더 좋아하기에 이따금 홀로 조용한 산을 찾아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붓을 들고 종이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풀어놓는다. 묵향 속에 분노를 다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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