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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집으로 걸어간 서른해
2024-11-01 10:26:42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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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림을 짓는 하루를 보내면서 문득 책 하나를 엮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입니다. 이렇게 긴 이름을 붙여도 될까 싶었지만, 때로는 조금 긴 이름도 어울릴 테고, 단출히 '들꽃내음 작은책집'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한때 서울에서 살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여밀 적에는, 살림살이를 말에 담는 길에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고 여기면서, 들숲바다를 늘 헤아려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2010년부터 아예 시골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낱말책을 짓거나 엮는 일꾼이라면 스스로 살림을 가꿀 뿐 아니라 언제나 들숲바다를 품는 하루를 누려야 하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서울이나 큰고장에서도 자주 들마실·숲마실·바다마실을 하면서 들숲바다를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내내 새롭게 흐르는 해바람비에 풀꽃나무에 들숲바다를 늘 지켜보고 살펴보고 들여다보지 않고서야 말을 말답게 못 여미겠구나 싶더군요. 왜냐하면 우리말이건 일본말이건 중국말이건 영어이건, 다 그 나라 삶자리에서 태어난 말인데, '말이 처음 태어난 삶자리'는 모두 시골이고 숲이고 바다이고 들입니다.

모든 말은 살림하는 어른과 어버이와 아이가 스스로 지었습니다. 살림꾼이 지은 말을 따로 '사투리'라고 합니다. 이 사투리를 요모조모 알맞게 오늘날 흐름에 맞추어 새로 엮기에 '새말'입니다. 번쩍거리거나 높거나 대단해 보이는 서울살림이라 하더라도, 모두 '숲에서 태어난 말'을 바탕으로 엮습니다.


책숲은 어떤 곳인가?

<들꽃내음 작은책집>은 두 가지를 기둥으로 삼습니다. 첫째는 '들꽃내음'이고, 둘째는 '작은책집'입니다. 낱말을 살피는 길에 늘 들꽃내음을 살폈습니다. 들꽃내음이 이끄는 대로 걸어다니면서 말 한 마디를 다루고 익혀 왔습니다. 이러면서 작은책집을 찾아나서려고 온나라 곳곳을 하염없이 걷고 다시 걷고 새로 걸었습니다. 큰책집에 잔뜩 있는 책만 읽어도 될 수 있지만, 큰책숲(대형도서관)에 깃든 책만 읽어도 한가득일 테지만, 큰책집이나 큰책숲에 없는 책도 아주 많아요.

그래서 더 헌책집을 찾아간다. 지쳐서 쓰러지려는 몸에 기운을 불어넣으려고 헌책집을 찾아가서 책을 읽는다. 납작오징어로 짓눌리거나 밟히거나 치이더라도 손을 위로 뻗어서 책을 읽으면, 한 칸에 1500사람이 넘게 탄 숨막혀서 죽겠는 지옥철에서조차 '찌끄러진 몸'을 잊은 채 '나비처럼 홀가분히 팔랑거리는 마음'으로 접어들 수 있다. (35쪽/1994.11.2.)

요즈음은 '독립출판'이라 하는데, 예전에는 '비매품'이라 하면서 조그맣게 태어난 책이 있습니다. 고을마다 모임마다 작은책을 꾸렸고, 중앙정부와 지자체도 비매품을 자주 냈고, 작은글꾼도 작은책을 자그맣게 묶어서 선보이는데, 이런 작은이야기는 새책집도 큰책집도 큰책숲도 아닌 '작은 헌책집'에만 들어왔습니다.

큰책집에서 다루는 책에 적힌 낱말만 본다면, 낱말책을 제대로 못 엮습니다. 온누리 모든 사람이 어떻게 말글을 다루는지 살피려면, 새책집이나 큰책숲에 아예 안 들어가는 '작은 헌책집에만 들어오는 작은책'을 꼭 두루 읽고 새겨야 합니다.


바구니에 담겨도 꽃이고 꽃그릇에 꽂혀도 꽃이지만, 들판에서 자라도 꽃이요, 나무그늘 밑에서 피어도 꽃이다. 책숲(도서관)에 꽂혀도 책이고, 새책집에 꽂혀도 책이지만, 헌책집에 꽂혀도 책이다. 책은 언제나 책이다. 쇳가루를 마시고 기름 먹으며 일한 손으로 쥐어도 책이며, 아파 드러누운 자리에서 힘겨이 쥐어도 책이다. 배움터에서도 책이고, 집에서도 책이다. 아이도 어른도 똑같은 책을 손에 쥔다.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책은 아니다. 어떤 넋으로 읽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책이다.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바뀌는 책은 아니다. 바로 오늘 즐거이 알아보고 읽으면 바뀌는 책이다. (69쪽/2000.9.26.)

저는 2007년 4월부터 책마루숲(서재도서관)을 열었습니다. 공공도서관이 아닌 개인도서관입니다. 낱말책을 쓰고 여미고 짓는 길에 곁에 둔 책을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열어둔 '서재도서관'이고, 서재인 도서관이라서 '책마루 + 책숲' 얼거리로 새말을 지었습니다.

책을 사고파는 곳이기에 '책집'입니다. 누구나 홀가분히 드나들며 책을 읽고 누리는 곳이기에 '책숲'입니다. '숲'이란 모든 숨붙이가 가벼이 드나들며 어울리는 푸른터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이라면 '나라책숲'이요, 시립도서관이나 도립도서관이라면 '고을책숲'입니다. 마을에서 조촐히 누리는 도서관은 '마을책숲'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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