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축제의 달이다. 5월이 행복한 이유는 휴일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는 5일(월요일)에 이어 6일(화요일)이 대체공유일이라 주말부터 나흘간 연휴를 보냈다. 누군가는 돌봄과 근로라는 노동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연휴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든든한 마음이 드는 건 부인할 수 없다.
5월이 행복한 다른 이유는 '가족'이다. 생존을 위해 강제되는 맞벌이와 휴일 노동, 자영업의 힘듦 속에서도 5월은 자녀들과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어린이날이 있다. 어버이날에는 시간을 내어 부모님을 찾아뵙는다. 밥벌이를 위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이 5월을 기다리는 것은, 삭막한 삶 속에서 한 줌 가족의 온기가 그리워서이지 않을까.
내겐 너무 불편한 5월
5월은 소위 가정의 달이지만 모든 가정이 행복하지는 않다. 휴일이 많은 건 감사하지만 '낀세대'로서 느끼는 5월의 압박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이들이 1년 내내 기다리는 어린이날은 공식적으로 '등골 브레이킹' 당하는 날이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봉투는 내 마음처럼 헐빈하다.
결혼을 하고 양가 부모님이 살아계실 경우 부담은 두 배로 커진다. 어릴 때 2천 원, 3천 원 하던 카네이션 한 송이가 이제는 만 원을 훌쩍 넘는다. 꽃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5월 8일 이후의 카네이션을 쓰레기라고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꽃은 생명이라는 특성을 가진 재화이기에 일정 시점을 지난 꽃들은 폐기된다.
취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어버이날은 지금처럼 부담스러운 날이 아니었다. 90년대만 하더라도 저출생, 고령화는 낯선 단어였다. 동네마다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고, 어버이날만 되면 학교 앞에는 카네이션을 판매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송이 몇 천 원 하던 카네이션과 마음을 담은 편지, 금전적으로 크게 부담이 없는 선물을 건네던 정도가 기억 속에 있는 어버이날 풍경이다.
올해 어린이날 연휴에 양가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미리 준비한 약간의 용돈을 드리고 플로리스트 지인에게 구매한 카네이션을 건넸다. 본가에서는 어머니가 준비한 밥을 함께 먹었고, 처가 어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는 장모님이 밥값을 계산했다. 늘 장모님이 계산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내가 먼저 계산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난감하고 불편했을 상황이 지금은 오히려 익숙했다.
11살 딸아이와 8살 아들에게 어버이날 선물을 받았다. 학교에서 만든 '효도 쿠폰'과 아이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였다. 5월 내내 사용할 수 있는 쿠폰에는 다양한 혜택이 들어 있었다. 3분간 안마하기, TV와 핸드폰 사용하지 않기, 심부름하기, 방 정리하기와 같은 것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편지를 썼다며 문 앞에서부터 받으라고 난리다. 손발을 씻고 노트북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았지만 지금 당장 읽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근엄한 표정으로. 봉투도 없이 꾸깃꾸깃하게 접힌 편지지를 받아 식탁 한쪽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