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이 내린 계엄령은 이 땅의 민주주의에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이 계엄령을 통해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극단주의자들이 거침없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극단주의자들의 말과 행동, 폭력을 여당인 국민의힘이 승인하고 동조하는 현상까지 보였다는 점이다. 더 우려스러운 건 헌법재판소가 계엄령에 대해 위헌이라고 명확하게 결정했음에도 극단주의가 여전히 정치권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현재 상황이다.
한마디로, 우리 민주주의가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다. 앞으로 당분간, 아니 상당 기간 우리 정치지형은 보수 대 진보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민주 세력 대 '반' 민주 세력의 대결이 될 것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보수 대 진보의 구도에선 '중립'이라는 지형도 있을 수 있지만, 민주 세력 대 '반'민주 세력의 대결에선 중립이 있을 수 없다. 현실 정치에서 '중립'이란 정치적 입장이 허용되는 곳은 오로지 민주주의밖에 없다. 한마디로 민주주의가 없다면 중립도 없다.
무엇보다 반민주세력의 핵심인 극단주의자들이 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이 유일하게 허용하는 중립은 '정치적 침묵' 뿐이다. 그런 정치적 침묵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건 중립주의자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이들, 나만 괜찮으면 상관없는 이들에 불과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극단주의자들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에 중립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일이나 다름이 없다.
극단주의자들이 어떻게 제도권 정당을 장악하는가
극단주의자들이 정치를 장악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것을 알려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는 미국이다. 지금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극단주의자와 그 극단주의자와 손잡은 공화당, 그 공화당의 지지자들이 미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의 질서를 어떻게 파괴할 수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하여 이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정치를 장악해 나간 과정을 살펴보면, 더욱 우리 안의 극단주의자들에 강력히 대응해야 함을 배울 수 있다.
트럼프와 극단주의자들이 미국정치를 장악해 나가는 과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저작이,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교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가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와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The Tyranny of Majority)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극단주의자들이 정치에 등장하게 되는 배경으로 자체적으로 선출직 공직자 후보를 내놓을 수 없는 무능한 정당을 꼽는다. 자체적으로 이 능력을 상실한 정당이 외부에서 인기가 좋은 아웃사이더를 영입하는데, 주로 이렇게 영입된 정치인들이 정당을 삼키고 극단주의적 정치를 하는 경우가 잦다. 히틀러가 대표적 인물이다.
인기 있는 아웃사이더를 영입하는 정당은 새로이 영입된 인사를 자기 통제 아래 둘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자체적으로 선출직 공직자를 배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정당이 이들을 통제한다는 건 대단한 착각이다. 아웃사이더는 자신의 인기를 활용해 정당을 장악해 버린다. 사례는 멀리 있지 않다. 정확하게 국민의 힘에서 지난 몇 년간 일어난 일이다.
극단주의자들이 어떻게 '다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가
이런 극단주의자들이 무너뜨리는 건 정당만이 아니다. 이들은 '다수' 민주주의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들이 다수 민주주의를 엉망으로 만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시작은 언제나 소수로 출발하기 때문이다. 레비츠키와 지블렛은 극단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할 때 일어나는 세 가지 전형적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선거 결과를 부정한다.
둘째, 평소에 멀쩡해 보이던 정당이 극단주의자들이 행사한 폭력을 옹호한다.
셋째, 극단주의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정당이 극단주의자들과의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결탁하여 지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