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도끼도 은도끼도 낡은 쇠도끼까지 한아름 다 안겨주던 다정한 심판관을 기억하실까? 맞다. 바로 산신령이다. 정직한 나무꾼에게는 너그럽고, 욕심꾸러기에게는 엄격하니 시원한 결말에 속이 편안하다. 한국인들에게 산신령이란 존재는 믿음직스럽고 친근하다.
시간은 흘러 바야흐로 21세기 대한민국. 챗GPT의 조언이 유용한 시대에 산신령은 뒷전일 듯 싶지만, 그렇지 않다. 유네스코(UNESCO)가 2005년에 '인류 무형 문화유산 대표 목록'으로 지정한 강릉 단오는 대관령 산신(山神) 없이 시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관령 산신이 대체 누구길래?
음력 5월 5일, 단오를 맞이하여 강릉에서는 단오제가 열린다. 올해는 5월 27일(화)부터 6월 3일(화)까지 진행된다. 단오는 가볍게 즐겨도 충분히 재밌다. 강릉 시민인 나조차도 30년 남짓, 남대천 불꽃 놀이를 구경하고, 감자전에 잔치국수를 먹은 뒤 소화도 시킬 겸 온갖 잡화 구경과 오락을 즐겨왔다.
하지만 강릉 단오를 단순히 먹고 노는 잔치로 끝내기에는 아깝다. 무엇보다 강릉 단오는 신라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주가 아닌 강원도 강릉에서 신라의 흔적을 찾을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다가오는 단오를 환영하며, 이번 역사 여행의 주제는 '강릉 단오 속 신라'다. 강릉 단오를 조금 더 유익하게 즐기고 싶은 분들을 위해 현지인이 발로 뛰며 준비했다. 강릉 단오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진짜 오래된 이야기 세 가지를 말이다.
강릉 단오 즐기기 첫 번째, 대관령 공식 산신령은 누구?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자. 대관령 산신은 대체 누굴까? 동화속에서나 듣던 존재가 강릉 대관령에도 있다고? 그는 바로 김유신. 여러분께서 알고 계신 장군 김유신이 맞다. 젊었을 때 기녀 천관의 집으로 자율주행하던 말의 목을 자르는 바람에, 노랫말에도 '말 목 자른 김유신'으로 등장하는 바로 그 김유신이다.
하지만 무고한 말의 생명을 해친 젊은 날의 사건에만 집중하기에는 그의 공이 너무 크다. 김유신은 무려 삼국통일을 이뤄낸 대장군이자 신라의 영웅이니 말이다. 왕족이 아님에도 '흥무대왕'이란 이름을 받아 그의 후손들까지 왕족의 예우를 누렸다.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도 그는 여전히 통일 영웅으로 존경 받았다.
통일 영웅은 대관령 산신이 되어 산신당에 모셔졌다. 김유신이 언제부터 대관령 산신으로 모셔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조선시대에도 김유신은 대관령 산신이었다. 허균이 쓴 <성소부부고>에 강릉 사람들이 단오날이면 김유신을 대관령 산신으로 모시고, 유교적 제례를 치렀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록에 따르면 김유신이 어렸을 때 대관령에서 산신에게 검술을 배웠고, 훗날 대관령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음력 4월 15일이면 대관령 산신당에서 김유신 장군에게 제사를 지내며 단오의 시작을 알린다. 이러니 21세기에도 대관령 산신이 중요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