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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차 편집자가 신입사원에게 꼭 하는 말
2025-05-24 11:11:47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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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 넘도록 출판 편집 외길을 걸으며 수많은 문장과 씨름했다. 때로는 희열을, 때로는 절망을 맛보았다.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1000권이 넘는 책을 편집했다. 퇴근 후와 휴일 시간을 쪼개어 직접 쓴 책도 스무 권이 넘으니, 이제 감히 '책 장인'이라 칭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끊임없이 자기 일을 갈고닦는 사람을 '아레테(arete)', 즉 탁월함과 도덕적 수양을 갖춘 존재라 불렀다. 이 말이야말로 내가 평생 추구해 온 장인 정신의 본질이다.

젊은 시절, 패기 넘치게 종이사전 편찬팀에 합류했지만, 끈기와 집념으로 무장한 외골수만이 감당할 수 있는 지난한 편찬 작업에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마치 거대한 지식의 퍼즐을 맞추는 듯했던 당시, 표제어 하나를 놓고 밤샘 토론을 벌이던 사전 편찬자들의 열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은 진정한 장인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거센 물결 앞에 종이사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그 장인들은 하나둘씩 출판 현장을 떠나야 했다.

그 후, 원고에서 마주하는 오류의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깊이 있는 검증 없이 손쉬운 인터넷 검색 결과만을 맹신하는 글쓰기 때문이다. 저자가 진실이라 믿고 쓴 내용이 여과 없이 독자에게 전달된다면, 책은 무지를 확산시키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무지는 깨우침을 통해 바로잡을 수 있지만, 굳건한 믿음으로 포장된 오류는 더욱더 위험하다.

저자는 확신하고 편집자는 의심하고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습니까?"

편집자로 일하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그때마다 나는 구양수의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에 더해 '다소통(多疏通)'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각을 나누고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열린 태도는 글을 더욱 명료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훌륭한 토양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글쓰기를 꽃 피우는 나무에 비유했다. 진실한 마음은 뿌리, 부지런한 노력은 줄기, 풍부한 독서는 진액, 넓은 견문은 가지와 잎이다. 꾸준한 수양과 깊은 성찰을 거쳐야 비로소 한 편의 온전한 문장으로 태어난다.

서점에 들어서면 글쓰기 관련 책들이 한 코너를 가득 채우고 있다. 대부분 비슷한 틀을 가지고 있지만, 실용적인 글쓰기에 초점을 맞추고 창의적인 사고보다는 효율적인 기술 습득을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을 반영하는 듯하다.

하지만 글쓰기의 기본적인 원리 몇 가지를 안다고 해서 능숙하게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수영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물에 들어가 직접 팔다리를 움직이는 연습 없이는 수영 실력이 늘지 않는다. 문장력 역시 끊임없는 훈련과 숙달 없이는 절대 향상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비법을 묻지만, 글쓰기는 마치 근육 운동과 같다. 꾸준함이야말로 글쓰기의 숨겨진 마법과 같다.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편집자는 최초의 독자이자 마지막 독자의 눈으로 꼼꼼하게 원고를 살핀다. 저자는 확신하지만, 편집자는 끊임없이 의심한다. 수많은 퇴고 과정을 거쳐도 완벽한 원고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옛말에 '교서여소진(校書如掃塵)'이라 했다. 맞춤법 하나, 띄어쓰기 하나가 책의 전체적인 품격을 좌우하고 독자의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숙련된 편집자는 늘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쥐구멍 같은 오탈자를 찾아내기 위해 매의 눈으로 원고를 샅샅이 훑는다.


새로운 편집자가 입사하면, 나는 꼭 메모지를 준비하게 하고 '의/적/들/것' 네 글자를 받아 적으라고 말한다. 교정 작업의 핵심은 이 네 글자에 있다. '-의'는 불필요한 한자어 중심 표현, '-적'은 의미를 모호하게 하는 접사, '-들'은 습관적인 복수 표현, '것'은 문장을 길게 만드는 의존 명사이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무심결에 우리의 문장에 습관처럼 달라붙어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된다. 마치 옷에 붙은 작은 먼지처럼, 그것들을 말끔하게 털어내는 순간 문장은 놀라울 만큼 간결하고 명확해진다. 편집자는 마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처럼, 매일 이 잡초들을 꼼꼼하게 뽑아내며 글이라는 아름다운 숲을 다듬는 사람이다.

"'의적들 것' 싹둑! 간결함이 힘이다."
"'의적들 것' 버려! 핵심만 남겨라."
"'의적들 것' 아웃! 군더더기 없는 문장을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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