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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첩 노정 따라 500여㎞ 걸은 사람
2025-01-01 19:41:07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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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여㎞ 걸었다고 제 삶이 바뀌진 않을 겁니다. 저의 역사일 뿐입니다. 이것이 켜켜이 쌓여 제 마음이 두터워지고 더욱 강인해지겠죠.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도 실감한 시간이었습니다. 전라도 백성의 헌신과 희생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박신영(42, 경기도 용인)씨의 말이다. 박씨는 지난 11월 25일부터 12월 25일까지 경상남도 진주에서 전라남도 진도까지 500여㎞를 걸었다. 이 길은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사를 모으고 병참물자와 군량미를 확보한, 이른바 조선수군을 재건하면서 명량대첩을 하러 가는 노정이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은 1597년 8월 3일(음력) 삼도수군통제사 임명장을 다시 받고 진주에서 하동을 거쳐 구례, 곡성, 순천, 보성, 장흥 등에서 병사를 모집하고 군량미를 확보하며 일본군과 건곤일척의 전투를 준비했다.

이순신은 구례와 곡성에서 병사를 모으고 순천에선 무기와 대포, 화약, 화살을 구했다. 보성에선 군량미를 다량 확보했다. 조정의 수군 철폐령에 맞서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다(今臣戰船 尙有十二)'는 내용의 장계를 쓴 곳도 보성이었다. 장흥에선 함대 12척을 회수했다.

이순신은 이렇게 재건한 조선수군으로 그해 9월 16일 울돌목에서 명량대첩을 일궈냈다. 조정의 지원은커녕 수군 철폐령까지 내려지는 등 온갖 악조건을 이겨내며 전라도에서, 전라도 백성들의 지원을 받아 조선수군 재건에 성공한 덕분이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데, '개고생'을 사서 한 박신영씨다. 40대 초반의 젊은이가, 그것도 수도권에 살고 있는데, 특별한 연고도 없는 남도를 걸었다고? 박씨한테 관심이 간 이유다. 박신영씨를 지난 25일 명량대첩의 현장 울돌목에서 만났다.

- 걷는 길은 전국에 많은데, 조선수군 재건로를 택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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