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국제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지금 트럼프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위기의 유럽연합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학문적으로 국제 정치(international politics 또는 international relations)는 사회과학(social science)으로 분류된다. 개인적으로 이성과 감정을 모두 가진 인간 그리고 그 인간들이 모여 구성한 국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국제 정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학자들이 국제 정치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의 주요 패턴을 발견해 과학적으로 공식화하고자 노력했고, 일정 부분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과학, 즉 국제 정치는 실험실에서 다양한 변수들을 통제하고 검증할 수 있는 자연과학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 트럼프는 이것을 간과한 듯하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으로 그린란드 매입, 밴스 부통령의 유럽 내 극우정당 지지 발언, 관세정책 등을 밀어붙이면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손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4월 29일,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행정부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학자인 저비스(R. Jervis)는 자신의 인생 말미에 이렇게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unintended effect)'를 낳는 것이 국제 정치의 한 단면임을 밝힌 바 있다.
분명 트럼프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개인적으로 트럼프의 재등장은 유럽통합의 역사에 새로운 모멘텀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삐걱거리는 대서양 동맹?
한국의 주요 정책 결정자들이 한미동맹을 하나의 상수로 상정하듯이, 오랫동안 미국과 유럽 사이의 주요 인사들이 대서양 동맹을 마치 주어진 그래서 변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환상을 트럼프가 산산조각내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당선자 신분으로 1월 7일 기자회견에서 파나마 운하와 그린란드를 장악하기 위해 향후 경제적 압력은 물론 군사력 또한 배제하지 않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이후 약 2주 후 대통령 취임식에서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서 미국이 그린란드를 통제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덴마크가 그린란드의 안보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덴마크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이 유럽과 관세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는 견해와 향후 북극항로 선점을 위한 전략이라는 등 다양한 해석이 이어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존의 대서양 동맹을 고려하면 이는 선을 넘은 행동이었다.
유럽을 향한 트럼프의 선 넘은 행동은 그가 임명한 밴스(J.D. Vance) 부통령을 통해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월 14일, 밴스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안보회의(Munich Security Conference)에 참석해 유럽의 민주주의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 중국 등과 같은 비민주주의 국가들에 의한 외부 안보 위협보다 유럽 내부의 민주주의가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