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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의 노래 아리랑] 남북스포츠 단일팀 단가로 아리랑
2022-10-03 17:25:01
김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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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은 취약한 정통성을 메우고자 국제대회를 유치했다.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다. 1987년 6월항쟁이 가능했던 요인 중에는 올림픽을 앞두고 시민들의 항쟁을 광주학살과 같은 유혈진압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5공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두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북단일팀 문제가 제기되고 당국자 간의 접촉이 이루어졌다. 단일팀의 단기와 단가가 결정되었다. 특히 단가는 아리랑으로 하자는 데 남북이 쉽게 합의하였다. 북측은 1920년대 나운규의 아리랑을 제시했고 남측은 이를 수용했다.

분단 이후 북한에서도 아리랑은 인민들 사이에 널리 애창되었다. 김일성이 일본군과 교전 중에 아리랑을 불렀다고 하여 신성시되고, 1995년에 발행된 김일성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5권과 6권에 이 부문이 언급되면서 아리랑은 국가 수준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의 한 신문은 해방 이후 북한에서 자주 부르는 주요 아리랑 3곡을 소개한 바 있다.

영천 아리랑

아주까리 동백아 더 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아리란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멀구야 다래야 더 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줄참외 밭참외 가득 따 놓고
앞집의 큰 애기 님 생각하네
멀구야 다래야 더 많이 열려라
산풍년 들풍년 만풍년 들어라
울넘어 담넘어 님 숨겨두고
호박잎만 난들난들 난 속였소.

경상도 아리랑

만경창파에 떠가는 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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