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오마이뉴스
북한군 진격, 이승만과 똑 닮았던 경찰의 도망
2024-07-27 19:30:56
박만순
  •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
  • 트위터로 공유하기
  • url 보내기
"대마면이 함락됐답니다!"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경찰이 서장 대리에게 보고했다.

"음..."
"긴급대책이 필요합니다."


영광경찰서장 대리 이O동은 간부회의를 열었다. 1950년 7월 20일 북한군 6사단이 전주를 점령한 이래 정읍과 고창을 거쳐 영광의 대마면까지 와닿은 시점이다. 1950년 7월 23일 새벽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들을 내보시오"라는 서장 대리의 말에 모든 간부들은 침통한 얼굴로 탁자만 바라봤다. 누군들 특별한 의견이 있을 리 없다. 빨리 후퇴하는 것 말고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사실 회의라기보다는 참석한 간부들이 서장 대리의 후퇴 명령만을 목 빼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천근만큼이나 무거워 보이는 서장 대리의 입에서 "빨리 후퇴 준비를 하시오"라는 말이 떨어졌다.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참석자들의 엉덩이가 의자에서 일시에 떨어질 때쯤이었다.

"서장님 사이렌을 울릴까요?"

순간 시베리아 고기압이 형성되면서 서장실을 꽁꽁 얼려버렸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옥죄었다. 누군가 입을 열었다.

"사이렌을 울리면 좌익들이 한꺼번에 준동할 겁니다. 사이렌을 울려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다른 의견을 내려는 순간 여러 개의 따가운 눈초리가 그를 향했다. 입을 열려던 그의 입술이 얼어붙었다. 서장 대리와 어떤 간부도 특별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모두가 자기 후퇴 짐을 싸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찰 불신

사방이 캄캄한 새벽 미명, 영광경찰서 마당에는 시동을 켜놓은 트럭이 있었다. 서장 대리가 조수석에 타자 트럭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광경찰서장 대리와 경찰 간부 몇 명이 새벽 6시 쓰리쿼터 1대에 쌀과 수류탄, 경기관총, 현금 등을 싣고 영광을 빠져나가 함평, 영산포, 영암을 거쳐 마산으로 향했다. 그렇게 영광경찰서 경찰들은 사이렌을 울리지 않고 1950년 7월 23일 새벽 후퇴를 했다.

이틀 전 영광군 국회의원 정헌조는 어딘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인민군들이 영광 쪽으로 가고 있어요. 빨리 피난 가시오." 정헌조는 "전쟁이 나면 사이렌을 울릴 테니 그것을 신호로 모두 피난 가시오"라던 영광경찰서 경찰의 말이 생각났다. '사이렌도 울리지 않았는데, 굳이 피난 짐을 싸야 하나?'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하지만 정헌조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영광 경찰과 더 나아가 대한민국 경찰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간 사건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불과 10여 일 전 영광군 보도연맹원에 대한 집단 처형이 그것이다. 영광경찰서에서는 상부 기관의 명령을 받아 1950년 초에 국민보도연맹을 결성했다. 과거 좌익 전력자들이 자수해 대한민국에 충성서약을 하면 빨갱이로부터 보호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약속에 따라 영광군 내 젊은이들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정헌조의 본가가 있는 영광군 군남면에서도 30여 명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전체 내용보기
주요뉴스
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로그인하시면
뉴스조회시 포인트를 얻을수 있습니다.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로그인하기 그냥볼래요
맨 위로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