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곳곳에 트리가 반짝이고 캐럴이 흘러나오면 이제 정말 12월이구나 싶다. 그렇게 들뜬 연말의 기분은 달력의 숫자가 하나하나 줄어들수록 아쉬움으로 번진다.
해마다 이즈음이면 나는 '시간이 왜 이렇게 빠른가, 우리가 또 한 살을 먹는구나'가 단골 레퍼토리였다. 돌아보니 새까맣게 젊을 때였던 나이 스물에도 서른에도 비슷했던 게 생각나 웃음이 난다. 늘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반도 못 이뤘다고 내년에는 꼭 버킷리스트를 이루겠다며 결의에 차있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연말을 맞는 내 마음은 조금 다르다. 그저 무탈하게 1년을 보낸 것에 감사하는 게 다다. 인생에서 나의 계획과 의지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변수들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크게는 이번 계엄과 탄핵 사태를 지켜보며, 개인적으로는 투병기간을 거치며.(관련 기사: '딸의 피로 얻은 새 삶', 이 한 줄을 쓰기까지https://omn.kr/28xyj ).
까마득한 꿈 같다
1년 동안 썼던 다이어리를 넘겨보다 보니 그동안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꿈만 같다. 백혈병을 진단 받은 뒤 그 길고 길었던 나의 병원생활이 까마득한 과거처럼 느껴진다.
언제부터 이렇게 멀쩡했다고 이러나 싶어 사람이 참 간사한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게 일어난 일을 한탄하고 재발의 걱정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도 못할 노릇이니까.
2024 다이어리 속 1월의 내 목표는 '회복에 집중, 집에서 스테퍼운동하기'였다.
합병증의 일환인 장숙주로 근 2개월 입원 후 다시 집에 왔을 때 몸무게가 15kg나 빠져있었다. 살과 근육이 다 빠져 걸을 수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우선 다리 힘부터 기르자며 엄마가 집에서 쓰시던 운동기구(스테퍼)를 가져다주셨다. 그러니 그때 내가 바란 건 누구의 도움도 없이 걷는 것.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 이식 부작용으로 다시 입원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가끔은 힘들고 불편하지만, 새삼 요즘의 내 일상이 정말 복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나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이들과 지낼 수 있고 내 발로 걸어 어디든 갈 수 있다. 가발과 모자 없이도 외출할 수 있고 내 몸에 1년 반동안 붙어있었던 히크만 카테터와도 작별했다(관련 기사: 내 가슴엔 3개의 줄이 있었습니다https://omn.kr/28cs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