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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는 암만 공부해 봐야 소용없다
2025-04-28 20:57:48
안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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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제국 대통령으로 만든 독일 국민의 우매함을 우리가 되풀이해선 안 된다. 진영 논리의 함정에 빠져 '개딸 전성시대'라는 광란의 시대를 또다시 허용해선 안 된다" - 4월 28일 전병헌 새미래민주당 당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후보 경선에서 89.77%를 득표한 사실에 아돌프 히틀러를 가져다 붙인 말이다. 하지만 히틀러는 독일의 대통령이었던 적이 없다. 히틀러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는 했다. 3명의 후보가 대결한 1932년 4월 대선 결선 투표에서 히틀러는 36.77%를 득표해 53.05%를 얻은 파울 폰 힌덴부르크에 패배했다.

흔히들 '히틀러도 선거로 집권했다'고들 해서 히틀러의 집권 과정에 독일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가 있었던 걸로 오해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것은 1933년 1월 31일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의해 수상으로 지명되면서부터다. 지명 당시 나치(NSDAP)는 제1당이긴 했지만 국가의회에서 33.6%의 의석을 차지, 독자적으로 권력을 잡을 순 없었다. 당시 의석 비율은 사회민주당(SPD) 20.7%, 공산당(KPD) 17.1%, 중앙당 12.0% 국가인민당(GNVP) 8.7% 등으로, 나치 중심의 과반 연립정부 수립도 어려웠다

힌덴부르크는 히틀러의 요청을 받아들여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총선 날이 다가오던 2월 27일 국가의회 방화 사건이 터졌다. 히틀러는 이를 공산당의 '붉은 혁명'으로 규정하고, 힌덴부르크의 서명을 받아 '독일의 모든 문화와 관련된 문서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 조치'라는 대통령의 긴급명령을 발동했다. 이 긴급명령을 근거로 나치의 돌격대와 친위대가 경찰 보조부대로 동원돼 공산당과 사민당 당원들을 잡아 폭행하고 고문하고 구치소에 가뒀다.

이같은 공포 분위기에서 치러진 3월 5일 국가의회 선거에서 나치는 전체 의석의 44.5%를 차지, 극우민족주의인 국가인민당과 연합해 겨우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탄압의 대상인 사민당은 18.25%, 공산당은 12.32%, 중앙당은 11.25%의 의석을 확보, 지지 기반을 지켰다. 히틀러의 기대에 못 미친 결과였다.

이렇게 보면, 독일 국민이 총선에서 나치를 제1당으로 만들어 주긴 했지만, 선거 결과가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어졌다고 보긴 어렵다. 히틀러가 수상 자리를 차지한 것은 그를 제어할 수 있다고 오판한 프란츠 폰 파펜 등 보수 정치인들이 힌덴부르크를 설득한 탓이었다. 힌덴부르크는 대통령 비상대권 발동을 허락해 히틀러 공포정치의 길을 열어줬다.

"히틀러도 과반 득표한 적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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