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4시 대지를 따갑게 내리쬐던 한낮의 태양이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의 영풍석포제련소 뒷산을 올랐다. '영풍제련소 봉화군대책위' 신기선 대표와 함께였다. 지난 2월 말부터 58일간 진행된 영풍석포제련소의 조업정지 기간 후 이곳에 나타난 변화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서낭골이라 불리는 골짜기를 통해 '남부지방산림청 영주국유림관리소'가 관리하는 임도를 따라 차량을 타고서 한참을 올랐다.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여느 심산유곡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울창한 산림을 자랑하는 숲을 지났다. 공기도 상쾌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 영풍제련소 뒷산의 정상 부근에 다다랐다.
나무 무덤 영풍석포제련소 뒷산을 오르다
거기서부터는 능선을 타고 몇 개의 봉우리를 걸어 넘었다. 가장 심각하게 식생이 고사한 현장인 영풍제련소 제1공장 바로 뒷산으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능선을 세 개 정도 넘어가야 하는 코스였다. 초입의 능선은 드문드문 고사한 나무가 보일 뿐 새 봄을 맞아 싱그러운 잎사귀를 내미는 나무와 곳곳에 자리잡은 철쭉이 연보랏빛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능선길 내내 곳곳에 철쭉이 자라 마치 철쭉군락지처럼 보였다. "이곳에서 이런 풍경을 만날 줄이야" 혼잣말을 내뱉으며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계속해서 능선길을 올랐다. 그 풍광이 너무 신기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신기해 하는 필자를 향해 신기선 대표는 말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철쭉꽃이 이렇게 만개하지는 않았다. 봉우리가 맺히긴 했지만 이내 시들어버렸는데 올해는 정말 다르다. 아마도 두 달간 제련소가 가동을 하지 않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랬다. 지난 2월 말부터 4월 24일까지 영풍은 역사상 최장의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받아 이행해야 했기 때문에 공장을 가동하지 못했다. 100여 개가 넘는 굴뚝에서 일제히 뿜어내던 아황산가스가 지난 두 달간 나오지 않으니 뒷산의 식생들에도 변화가 온 것일 터이다.
영풍석포제련소는 2019년 물환경보전법 등을 위반한 것이 적발돼 경상북도로부터 2개월의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영풍은 그 행정처분에 순순히 응하지 않고 소송으로 맞섰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법원으로부터 최종 2개월의 행정처분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받고서야 조업정지 결정을 받아들여 지난 4월 24일까지 58일간 공장 가동을 멈춘 것이다.
철쭉뿐 아니었다. 고사리도 올라왔다. 드문드문 고사리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신대표의 설명은 이어졌다.
"고사리가 올라오는 것도 참 신기하다. 그런데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고사리 줄기가 길게 쭉쭉 올라와야 하는데 올라오다 갈라지지 않나. 이런 건 상품이 되기 어렵다. 완전한 정상은 아닌 것 같다."
그제서야 곳곳에 보이는 고사리 줄기가 올라오다 줄기가 갈라지면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들이 필자의 눈에도 들어온다. 그러나 아황산가스 폭탄이 내린 이곳에서 고사리를 보게 될 줄을 몰랐던 필자로서는 정말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