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0일, 24번째 420장애인차별철폐의날 전국집중결의대회 마지막에 나온 어깨꿈 밴드의 노래 'T4'는 이렇게 시작했다.
내 인생은 나의 것 / 내가 결정하는 것 /그 누구도 나의 의지/앗아갈 수는 없네
나치 독일이 1939년 게르만 민족의 유전적 우수성을 지키겠다고 시행한 장애인 대량 학살 사건을 다룬 T4작전을 빗댄 이 노래를 부르면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1939년 히틀러의 독일과 2025년 대한민국이 똑같다"라면서 "장애인을 비용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활동하고 있는 기록팀 싸람(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에서 노동절 특집으로 '윤석열 정권 아래에서 진행된 노동탄압'을 기록하자고 의견을 모았을 즈음, 전장연에서 만든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권리중심공공일자리) 소개 동영상을 보았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면접에 온 한 장애인이 AAC(보완·대체의사소통)기기의 자판을 두드리자 기계음성이 들려왔다.
"사회 속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양말 하나 사는 것부터 지금 이 자리에서 면접 보는 것까지 나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입니다."
영상 속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은 자신의 속도로 세상과 소통하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들 표정들이 밝아 그들이 웃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입꼬리도 올라갔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이 지금은 이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형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 400여 명이 해고됐고, 일부가 '권리중심노동자해복투'란 이름으로 1년 넘게 투쟁하고 있다는 것. 해고는 서울시에서 이루어졌지만 집권 초기부터 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행동을 비판하면서 "장애인은 사회적 약자이지만 전장연은 강자"라며 전장연을 혐오 집단으로 매도해 온 윤석열 정권의 기조가 서울시 권리중심공공일자리의 해고 사태에도 영향을 줬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420대회 다음날 국회 본관 앞으로 권리중심노동자해복투를 만나러 갔다. 가는 길에 '어떤 일을 하는 데 드는 돈'을 뜻한다는 '비용'이란 단어를 계속 떠올렸다. 인간의 권리보다 비용을 앞세우는 사회는 무엇을 잃어가고 있을까.
서울시에서 시작했는데 서울시에서 해고
권리중심노동자해복투의 정식 명칭은 다소 길다. '오세훈 서울시장,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최중증장애인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 및 원직복직 투쟁을 위한 범시민대책위원회.' 길긴 하지만 이 이름만 잘 살피면 이들이 왜 투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중증장애인에게 장애인권익옹호, 문화예술, 인식개선교육 직무를 제공하는 일자리이다. 기존처럼 비장애인의 일자리에 장애인을 끼워 맞춘 것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의 몸과 욕구에 맞게 설계한 맞춤형 일자리 사업이다. 한국도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CRPD)을 알리고, '장애인 권리' 준수 실태를 모니터링하는 '캠페인 노동'이기도 하다.
2020년 서울시에서 260명으로 시작해 2024년 현재 경기도, 전라남도, 경상남도, 강원도 등 13개 광역과 기초자치단체에서 1500명에 가까운 중증장애인들이 권리중심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한 서울시가 2023년 12월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400여 명의 권리중심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됐다. 아니, 대부분 근로지원을 받는 중증장애인들이어서 근로지원인과 전담인력까지 합하면 전체 해고자 수는 몇 백 명을 더해야 한다.
하태경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전장연이 불법·폭력 시위에 중증장애인을 강제 동원했다" "서울시 보조금을 유용해 시위 참여에 대한 일당을 지급했다"와 같은 사실을 왜곡한 말들을 퍼뜨리자 서울시는 기다렸다는 듯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핵심인 권익옹호 캠페인 직무를 삭제하더니 아예 사업 자체를 폐기한 것이다. 권리중심노동자해복투를 담당하고 있는 대추 활동가가 서울시를 비판했다.
"집회에 동원된다고 하는데 이동권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의무사항으로 이의 이행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하는 것뿐이고 다른 직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400명을 갑자기 해고하면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