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의 현실을 견디며 마침내 해방된 한반도는 이념에 따라 남북으로 체제가 갈렸으며, 그 이후 지금까지 분단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분단국가'로 칭해지고 있지만, 분단 상태가 언제 해소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한때 남북의 정상이 만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첨예한 대립의 구도를 형성하며 갈등 관계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남북의 분단 상황도 언젠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다가오지만, 분단 상황이 지속되면서 이념의 차이 혹은 분단 현실을 다르게 인식하는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인 갈등이 때때로 표출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의 분단 상황은 신념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이념적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아울러 극심한 갈등으로 인한 상처는 한국 현대사에 깊게 아로새겨져 있다고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러한 갈등의 원인은 '이념'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에서 비롯되었고, 다만 누군가 그것을 이념의 잣대로 갈라놓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공마당 - 망각의 늪에서 끄집어낸 1948 '여순'>(2021년 12월 출간)은 정미경 소설가의 첫 소설집으로, 1948년 10월 '여순사건'을 다루고 있다.
1948년 제주에서 발생했던 '4.3 사건'은 국가 권력에 의한 양민의 학살이라는 결과를 빚었고, 지난 2000년 '4.3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당시 사건에 대한 조사와 함께 희생자들의 명예회복 조치가 늦었지만 뒤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4.3 사건'의 여파가 육지로 옮겨지면서 발생했던 '여수 순천 10.19 사건' 역시 그릇된 공권력의 행사로 많은 수의 희생자들이 발생하면서, 시건이 종결된 이후에도 이념에 따른 지역민의 갈등이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었다.
더욱이 공권력의 사용을 옹호하는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 사실조차 털어놓을 수 없었지만, 2021년 '여순사건 특별법'이 통과되면서 진상조사와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조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를 통해 과거의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야만 했던 유족들이 이제부터라도 가슴에 쌓인 한을 풀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제주 4.3 사건'과 '여수 순천 10.19사건'은 오랫동안 이념적 잣대로 인해 '반란'이라는 오명을 달고 있었지만, 최근 과거사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두 사건은 '국가 폭력'으로 인해 애꿎은 국민들이 희생되었던 것으로 규명되기에 이르렀다. 지난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두 사건이 이념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이들에 의해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토로할 수조차 없었던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당시 희생자들 대부분은 '이념'이 아닌 '일상' 혹은 '생존'의 문제로 사건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편가르기'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이 밝혀진 것이라고 하겠다. '제주 4.3'에 이어 '여수 순천 10.19'의 의미가 재조명되고, 특별법에 의해 억울한 희생을 기리는 작업이 시작된 것은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조치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