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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단체 회장이 불붙인 '대통령 추대설'... 정부가 발칵
2024-07-27 11:47:29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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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란 단어가 처음 나왔을 때는 생경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생경함을 떠나 당혹감이나 불쾌감을 느꼈을 인물도 있다. 종신 군주인 고종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자신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신조어였을 수도 있다.

그 시절에 대통령이란 단어가 사용되는 장면을 국사편찬위원회의 <고종시대사> 제4집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1899년 4월 24일 자 대한제국 고등재판소 판결문에 따르면, 직업이 훈장인 권형대는 고종 정권을 전복하고 대통령을 추대할 계획을 품었다. 1898년 상반기에 그는 충남 공주군 주점에서 전직 참봉인 44세의 장윤상에게 이런 말을 하며 거사 참여를 요청했다.

"광무 3년 2월 중에 이준용이 만약 환국하면 대황제폐하는 존(尊)태상황위하고 이준용이가 대위(代位)를 하거나 대통령을 하거나 수기위지(隨機爲之)할 터이니"

다가오는 1899년 2월 중에 고종의 조카이자 흥선대원군의 장손인 이준용이 일본 망명을 끝내고 귀국하면 황제 고종을 태상황 위치로 올리고 이준용을 황제나 대통령으로 만드는 거사를 벌이겠다는 말이었다. 이준용에게 어떤 자리를 줄지는 상황을 봐가며 처리할 테니 자신을 믿고 따르라고 전직 9급 공무원을 부추겼던 것이다.

안 그래도 고종은 이준용 때문에 가슴을 자주 쓸어내렸다. 고종이 청나라·일본과 영국·프랑스·미국 등이 무서워하는 러시아를 끌어들인 뒤 관계를 강화하는 조짐이 나타나자, 청나라의 조선 현지 책임자인 원세개(위안스카이)는 1886년에 응징 차원에서 이준용 옹립을 계획한 일이 있다. 동학혁명이 있었던 1894년에는 대원군이 동일한 계획을 추진한 일이 있다.

훈장 권형대는 이준용이 귀국하면 황제나 대통령으로 세우겠다며 사람들을 규합했다. 고종 입장에서는 '하필이면' 이준용이 거론됐다는 점과, '하필이면' 대통령제가 언급됐다는 점 때문에 이 사건이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1899년 4월 24일자 <고종실록>에 따르면, 장윤상은 교수형을 선고받고 나머지 사람들은 태형과 유배형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다들 감형됐다. 권형대가 수사망을 피해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몸통을 잡지 못했다는 이유로 감형이 적용된 것이다.

'박영효 대통령 추대설' 고종에 각인시킨 친일파

고종이 대통령이란 단어에 민감하다는 점은 훗날 친일단체 일진회 회장이 될 중추원 일등의관 윤시병과 관련해서도 증명됐다. 1851년에 출생하고 무과에 급제해 관료의 길을 걸은 윤시병은 동학혁명 뒤에 일시적으로 퇴직했다. 그 후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 뛰어들어 주목을 받다가, 권형대가 이준용 대통령을 운운하던 1898년 상반기부터 의회 비슷한 중추원 의관(의원)으로 복직했다. 독립협회 활동이 기반이 돼 중추원 고관으로 복귀하게 됐던 것이다.

이 시기에 윤시병도 대통령이란 글자를 고종황제의 뇌리에 넣어줬다. 윤시병 본인의 의중과 관계없이 그의 행동이 그런 결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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