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들어서면서 내린 눈이 보통이 아니었다. 밤에도 앞이 안 보이도록 쏟아지는 눈에 아이들은 좋아라 밖으로 뛰어나오는데 강에 있는 천막이 걱정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밤 당번 하는 분께 연락하니 천막 지붕에 눈이 계속 쌓여 털어내고 있단다. 다음 날 달려가 교대하는데 천막 무너질까봐 새벽 2시에나 잠이 들었다고, 엄청 쏟아졌다고 허허 웃으신다.
밤 사이 내린 눈으로 폭 뒤덮인 금강을 보니 눈이 부시다. 강물이 차가운 눈밭보다는 따뜻한지 오리떼가 강 위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간밤의 걱정이 무색하게 평화로운 금강을 보니 철없이 눈물이 난다. 눈 사이로 흐르는 금강은 강직하고 오롯한 모습이다.
저 보가 없었고, 우리 천막이 없었다면 오히려 금강은 원래 그 모습으로 더할나위 없이 아름다웠을지도 모르겠다. 만장과 현수막이 오히려 우리 욕심인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생명의 만장을 펼쳐라... 생명의 편에 선 이들의 외침
지난 1월 25일, 서울에서 열린 윤석열 퇴진 집회에 지금의 생명 투쟁 현장의 이름을 담은 만장이 등장했다. 김성장 선생의 멋진 붓사위로 완성된 만장들에는 설악산, 지리산, 가덕도, 새만금, 제주와 4대강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청양 지천댐 건설 반대 투쟁 중인 주민분들도 함께 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오픈마이크에서 발언도 하고, 당일 열린 깃발 행진에도 함께 하면서 '윤석열 퇴진' 이라는 제목 아래 자본과 기득권의 생명 학살, 착취를 오가는 이들에게 외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되고도 하천에는 포크레인이 들어서고, 댐 관련 예산을 늘리겠다는 환경부의 계엄이 끝나지 않았다. 적폐의 뿌리가 사방에 남아 아무 일 없다는 듯 움직이고 있는 현실이다. 실상의 권력은 대통령이 아니라 '자본과 기득권의 시스템'이 쥐고 있음을 뼈 저리게 확인하고 있다. 이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 그 시스템을 바꿔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각자의 현장에서 생명을 지키는 것으로 그 시스템을 바꿔내고자 하는 이들이 여전히 거기 있다. 12월 3일 이후 드높아진 '윤석열 퇴진'의 큰 깃발은 결국 우리의 현장들에서 무수히 외쳤던 목소리들이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이 개발과의 싸움에서 한치도 물러설 수 없다. 바라는 세상은 고작 '윤석열 그 이전의 세상'이 아니다. 이 광장에 나오는 목소리는 '그 전'의 세상마저 전복시킬 완전히 새로운 목소리여야 한다. 생명의 편에 선 이들은 생명의 목소리를 그 광장에 메아리치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