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걸을까? 다비드 르 브르통( David Le Breton)은 그의 저서 <걷기 예찬>에서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사유하고 존재하는 방식"으로 바라보았다. "걷기를 통해 인간은 자신과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이는 철학적 심리적 사회적 의미를 지닌 행위"라고 했다.
맞는 얘기다. 어떤 이는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과의 일체감을 통해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하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처럼 걸으면서 외부 세계를 관찰하고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한편으론 치유 방식의 걷기도 있지만 순례자나 방랑자처럼 종교적 깨달음을 얻기 위해 걷는다.
지난 22일(토) 오전 10시 50분, 순천역에서 내려 '네이버 길찾기' 프로그램을 따라 순천 동천을 건너 '오천그린광장'을 가니 순천정원박람회장 못지않게 잘 꾸며진 야외정원이 나왔다. 날씨가 풀려서인지 가족들과 함께 온 어린이들이 반팔을 입고 뛰어놀고 있었다.
지도가 가리키는 대로 정원박물관 서문을 지나니 청암대학교가 나왔다. 봄바람에 휘날리는 플래카드에는 신입생 모집을 위한 홍보글이 펄럭거렸다. 여기서부터는 보성 벌교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봄은 꽃소식과 함께 오는 것 같다. 육교 밑 화원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네이버 길찾기' 프로그램을 따라가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 자동차도로를 따라 안내하기 때문에, 사람이 1미터도 안 되는 차도의 갓길을 따라 걸어야 한다. 자동차가 바로 옆으로 쌩쌩 달려 위험하기도 하고, 동시에 공해도 심하다.
할 수 없어 도로 아래 농로를 따라 걸었다. 아직 농사철이 되지 않아서인지 작년 가을에 벤 벼 그루터기가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계절은 여지없이 변하고 있었다. 농로 주변에는 민들레가 피고 야생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별량면 소재지를 찾아가는 이유가 있었다. <소록도의 구술 기억> 1권에 등장하는 김정호(가명)씨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는 취지다. 함경북도 여흥 출신인 김정호씨는 올해 나이 100세로 소록도에 생존해 계신다.
<소록도 구술기억>1권에는 김정호씨가 고향을 떠나 소록도를 찾아가는 여정과 유랑생활하면서 겪었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다음은 그의 구술기록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이들의 애환을 이해하고자 일부 소개한다.
중학생이던 시절 한센병이 발병한 그는, 당시 주위 사람들이 보내는 불편한 시선을 피해 교복을 입은 채 집을 나섰다고 한다. 형님이 가르쳐준 '전라남도 다도해 소록도'라는 주소만 가지고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경찰서에선 담당 순경이 "소록도는 힘드니까 여수 애양원이라는 데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라. 거기 가면 훨씬 좋다"며 애양원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애양원에 갔지만 "받아줄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단다. 실망해서 순천으로 돌아와 정류장에서 벌교행 표를 사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우연히 승하차를 돕는 빨간 모자 쓴 사람과 실랑이가 발생했다.
"야! 너 보따리 싸가지고 가라"
"벌교행 표 끊었고 지금 벌교에 갈 겁니다."
"벌교로 가든지 말든지 그건 네 자유고. 차는 못 타니까, 걸어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