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눈이 내렸다. 돌담이 뒷산과 대비되면서 선명하게 드러났다. 올 봄까지만 해도 저 풍경에 돌담은 없었다. 2월 말에 장만한 밭에는 주먹만한 돌이 많았다. 돌밭이라 주위에서는 콩이나 들깨는 잘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내게는 많은 돌을 어쩌겠느냐 하는 위로와 동시에 체념하라는 말로 들렸다.
줄곧 농사가 이어져왔던 땅이니 당장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나 땅을 일구고 밭을 가는 밭 농사의 근본에 비추어 보면 돌을 주워 내는 것이 순리였다. 다만 급하지 않으니 계절이 바뀌든 해가 바뀌든 서두를 것 없이 틈나는 대로 돌을 주워 내기로 했다.
봄부터 여름까지 돌 줍기
4월부터 손 연장을 이용하여 돌을 끌어 모아 밭 가장자리로 옮기니 하나 둘 돌무더기가 만들어지고 그 양이 적지 않았다. 이걸 어찌할까 고민하다 약 40미터쯤 되는 밭 남쪽 경계의 둔덕을 따라 돌담을 쌓기로 했다.
골라 낸 돌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 목적이나 돌담을 세우면 밭 가장자리의 경사면이 사라지면서 밭이 넓어지고 빗물이 흙에 쓸려 나가는 것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큰 돌이라 해봐야 어른 주먹만한 것이라 돌만으로 돌담을 쌓을 수 없어서 돌망태를 구입하여 경계를 따라 1미터씩 이어가며 돌을 채우는 과정을 반복한 끝에 7월 하순에 돌담이 완성되었다.
적지 않은 돌을 골라냈지만 밭에는 여전히 돌투성이라 비록 만리장성에 견줄 만하다고 자화자찬한 40미터 길이의 돌담 완성은 돌 주워내기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전에 없었던 아름다운 돌담이 눈 앞에 드러났다는 것과 이제는 이 돌담이 오래도록 이 풍경의 일부로 자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제 밭에서 나온 돌로 땅의 생김새에 따라 세워진 돌담이니 모양이나 색깔이 오래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주말에만 작업을 하다 보니 3개월이 걸렸다. 시간이 되는 가족들이 틈틈이 몇 시간씩 함께 참여했다. 한 손으로는 겨우 돌 두세 개 밖에 쥘 수 없으나 작은 손들이 모이니 큰 그릇이 되었고 과거 농경사회에서 가족의 규모가 곧 농사의 규모였다는 점을 실감했다.
가끔 산책을 나오는 마을 주민들은 아무도 일하러 나서지 않는 초여름 한낮 땡볕 아래에서 돌을 골라내는 모습을 보며 무모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여기는 눈치였다. 이들은 오랫동안 보아온 대로 원래 돌이 많은 밭으로 인식하고 있어 자신들이라면 하지 않을 일을 우리가 벌이고 있으니 당연히 의아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