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로맨스 드라마에 '실장님'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여주인공 대부분은 '실장님'의 도움이 필요한 부하 직원인 경우가 많았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녀들은 일로 인해 부딪힌 난관, 혹은 인간관계로 인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마다 '슈퍼맨'처럼 실장님이 짠 하고 나타나 문제를 해결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상황이 좀 바뀌었다. 실장님의 도움을 받던 여주인공들은 스스로 실장이 됐다. 최근 드라마에 직장 생활의 요직에 있거나, 전문직을 가지고 그 능력을 발휘하는 여성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다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여전히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금토 드라마로 맞붙은 SBS의 <나의 완벽한 비서>와 MBC <모텔 캘리포니아> 이에 펼쳐지는 이야기가 그렇다.
비서가 필요한 여성 CEO
창업 5년 만에 서치펌 피플즈를 업계 2위로 만든 강지윤(한지민 분)은 회사에 자신의 모든 걸 바쳤다. 직원들과의 회식 후 다시 회사로 갈 정도다. 그의 큰 아파트에는 텅 빈 냉장고가 있고 거실에는 소파 하나가 있을 뿐이다.
일중독 강지윤 대표는 자기 일에 있어서는 완벽하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게 서툴다. 직원들 이름도 못 외우고, 자신의 차도 헷갈린다. 쓰러져 병원에 갔더니 뇌가 과부하가 걸려 비명을 지르는 것이란다.
그때 천사처럼 나타난 남자가 서미애 남편의 친구 유은호(이준혁 분)다. 인사과 과장이었던 유은호는 딸을 위해 선택한 1년 간의 육아휴직을 쓴다.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서류 심부름도 마다하지 않고 버티려던 그를 회사는 누명을 씌워 내쫓는다. 심지어 동종 업계에는 발도 못 붙이게 했다. 가장으로서 울며 겨자 먹기로 '비서'직을 선택한 유은호. 자신의 맘에 들지 않아 수시로 비서를 갈아 치우던 강지윤은 유은호를 못마땅해 한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전통적인 로맨스 드라마의 화법을 뒤엎는다. 여주인공은 일만 아는 CEO고, 남주인공은 그녀의 비서다. 단지 직위만 바뀐 게 아니다. 여주인공은 동네 아이들과 농구 경기를 해도 지는 건 싫어한다. "돈값 못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고 당당히 밝히는 능력 우선주의자다.
유은호는 다르다. 그는 강지윤의 사무실에 들어서서 제일 먼저 시들어 가는 화분과 꽃에 눈길을 준다. 싱글 대디인 유은호는 놀러 온 서미애가 감탄하듯 요리에 진심인 건 물론, 아이도 전문가 수준으로 돌본다. 어디 그 뿐일까. 사무실 정리정돈부터, 일정 관리, 일상생활 케어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것이 없이 말 그대로 완벽하게 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