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혐오의 시대'가 닥친 요즘이다. 한국 사정만도 머리 아프지만, 바다 건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접하면 뭔가 잘못 돌아가는 게 확연하다. 물론 세상만사가 선과 악처럼 한칼에 나뉠 수 없으니 면밀하게 분석해 교차방정식 풀듯이 시시비비 따져야 하지만, 예전에는 적절하게 조절되던 균형이 붕괴 위기에 처한 건 분명해 보인다.
괴이한 것은, 예전에는 내심은 어떻건 좀 더 힘 있는 자, 여유 있는 이들이 세상 이목 때문이건 법제도 관련이건 마지못해서라도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와 분배를 위해 양보하는 시늉이라도 보였던 데 반해, 이제는 분노를 터뜨리며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 살기는 누구나 더 팍팍해졌고, 자기 앞가림과 현상 유지만 하려 해도 부단한 노력과 피로가 요구되는 시절이긴 하다.
그러나 공동체를 지속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의 화합과 연대 대신에 배제와 혐오가 해법이 될 리 만무하다. 즉자적인 분노가 대안 마련이 아닌, 감정적 화풀이 대상을 찾고 오도된 우월감을 만족하기 위해 만만한 대상을 공격하는 것으로 흘러감을 경계할 이유다.
<원더>는 근래 독립예술영화 재개봉 붐을 타고 10여 년 만에 돌아왔다. 검증된 인기작을 재탕 삼탕 우려내는 현상에 염려도 들지만, 상당한 화제작이었음에도 본 작품을 접하지 못한 이들이 훨씬 많으니 슬쩍 넘어가도 될 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만난 <원더>는 개봉 당시에도 그렇지만, 모두가 분노를 배설하고픈 욕망에 몸부림치는 세태를 돌아보게 만드는 '아름다운 조화'와 '내면의 힘'을 일깨우는 영화로서, 오히려 지금 시절에 더 효용이 극대화하는 작품이었다.
모두의 입장을 전하되, 좌표 설정은 단호하게
# "어기"의 경우
'어거스트 풀먼(이하 '어기')'은 마른하늘 날벼락에 맞을 확률이라는 안면기형 복합 증후군을 안고 태어났다. 27번의 성형수술을 거쳐 간신히 얼굴 형상을 고정할 수 있었던 어기는 5학년까지 엄마의 홈스쿨링을 받으며 외톨이로 지냈다.
이제 어기의 부모님은 언제까지나 집 안에서만 고립된 삶을 살게 할 수 없다는 다짐으로 아들을 학교에 입학시키려 한다. 바깥에 출타할 때는 남들과 다른, '괴물'이라 놀림을 당하는 외모 탓에 항상 우주비행사를 떠올리게 하는, 머리 전체를 감싸는 헬멧을 착용하던 어기는 이제 헬멧을 벗고 민낯으로 생전 처음 또래 아이들로 가득 찬 학교 교정에 들어선다. 물론 그의 학교생활이 순탄할 리 없다.
# "비아"의 사연
어기는 5학년이 될 때까지, 엄마와 아빠, 노견 '데이지', 그리고 누나 '비아'와 적어도 집 안에선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 엄마는 헌신적으로 어기를 양육해 왔다. 미술에 재능이 있고 학구열이 높아 대학원 과정을 다니다 아들 때문에 석사 학위를 포기했을 정도다. 물론 아빠와 비아도 아들-동생을 위해 노력한 건 매한가지다. 하지만 동생의 상황이 그러한 터라 항상 부모님의 관심은 어기를 향해서만 쏠린다.
비아는 늘 착하고 얌전한 모범생 취급이다. 물론 동생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었던 장애라는 걸 알기에 자신이 못된 생각을 품으면 안 되는 걸 인정하지만, 가끔은 엄마가 자신에게도 시선을 건네고 함께 시간을 보내주길 갈망한다. 게다가 어릴 적부터 자매처럼 지내온 친구 '미란다'가 언젠가부터 자신을 멀리한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나이, 남들에게 말 못할 소외감이 비아를 괴롭힌다.
# "잭"의 입장
잭은 어기가 입학하기 전, 상담차 학교에 들렀을 때 교장 선생님이 학교 안내를 부탁한 셋 중 하나다. 나머지 둘 중 한 명은 그저 시킨 일만 할 뿐, 마이페이스로 일관하고 ('샬롯') 다른 한 명은 겉으론 따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선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다. 잭만이 어기에게 마음을 열고 친절을 베푼다. 어기에게 잭은 첫 번째 친구가 된 것이다.
잭에겐 어기에게 감춘 속내가 있다.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잭에게 어기를 챙겨달라는 권유가 있었고, 잭은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할 뿐이다. 하지만 할로윈 축제를 앞두고 모두가 가면과 코스프레를 한 터라 어기가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 채 본심을 무심코 내뱉고 만다. 상처를 입은 어기는 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잭은 후회하지만 한 번 멀어진 관계는 회복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