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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박사를 만난 그녀, 꿈을 꾸기 시작했다
2025-02-25 18:16:28
곽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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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루시 해리스가 헨리 지킬을 처음 만난 것은 술집 '레드 랫'이었다. 약혼식으로 피곤했던 지킬은 친구 존 어터슨의 손에 반강제로 이끌려 이 술집에 오게 된다. 무대에 올라갈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남기고 술집에 도착한 루시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도 무대 위에 오른다.

"내 속에 나도 모를 어떤, 또 다른 숨어있는 어떤 나를 주체하긴 정말 곤란해. 그런 거지, 그게 너지. 알고 있지, 네 맘이 원하는 거지. 다들 그래. 내가 생각할 땐 남자 여자 모두 그렇게 다 똑같아." -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제1막 No.7 'Bring on the Men' 중에서

지킬은 넋을 놓은 듯이 무대 위 루시를 바라본다. 그러나 환상적인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루시를 기다리는 것은 포주 스파이더의 폭력과 착취였다. 지킬의 개입을 만류하는 어터슨, 그렇게 어색하게 술집에서 마주하게 된 루시와 지킬. 루시는 여느 남자가 그랬듯, 그 역시 자신에게 똑같은 것을 바라는 줄 알았지만, 지킬은 조금 달랐다. 지킬은 루시에게 필요한 게 "힘이 될 친구"라며 명함을 하나 주고 떠난다.

"지킬이 '아름다운 얼굴이다'라고 말해 줄 때부터 '이게 뭐지?'라고 생각하면서 루시 안에서 조금씩 마음의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 봤어요, 레드 랫이라는 곳이 막 그렇게 신사들이 와서 굉장히 정중하게 여자들을 대하는 곳이 아니잖아요. 항상 거칠게 대하고, 여자들은 그렇게 다뤄지는 곳이었는데, 이 사람이 와서 저에게 너무나 예의 있게 칭찬해 주죠. 이렇게 멋지고 예쁜 말들을 해주는데, 루시는 이런 대우조차도 처음 받아보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그때부터 두 사람의 시계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그러나 비슷한 종착역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한다. 술집 마담 기네비어는 루시가 '호구'를 놓쳤다며 빈정거리고 한탄하지만, 루시는 그 순간부터 지킬을 만나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나도 몰랐던 나'를 마주하며, 자신이 애써 잊고 있던 어떤 꿈이 자기 안에서 자라나는 걸 느끼게 된다.

반면, 무대 위에서의 빛나는 모습과, 무대 아래에서 폭력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루시를 본 지킬은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해서는 안 될 실험을 시작한다. 술집의 이름, 루시를 상징하는 색깔, 그리고 지킬 박사가 자신에게 주사하는 시약의 색이 모두 붉은 색인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부담보다는 기대, 아직도 성장형인 배우

"20년 동안 진짜 정말 많이 사랑받은 작품이잖아요? 제가 20년 동안 매번 참여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오랫동안 함께했는데, 이런 좋은 작품에 또 참여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행운인 것 같아요. 특히 작품을 보신 분들이 진짜 많이 사랑해 주시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고는 해요. 제 팬 분들도 제가 루시를 할 때의 반응이 더 뜨겁기도 하고요. 팬들이 얼마나 이 작품을 사랑하고, 이 캐릭터를 얼마나 더 애정하는지를 아니까 정말 감사하고, 또 그만큼 <지킬 앤 하이드>가 힘이 있는 뮤지컬이라는 것을 다시 느껴요. 어렸을 때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소중함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가 20주년으로 돌아왔다. 지난 2024년 11월 29일에 개막한 <지킬 앤 하이드>는 오는 3월 9일 1차 캐스팅 공연을 마무리하고 오는 5월 18일까지 2차 캐스팅 배우들이 이번 시즌을 이어간다. 벌써 9번째 시즌을 맞이하게 된 <지킬 앤 하이드>는 명실공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컬이자,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쇼 비즈니스이자, 시대적 한계와 빛나는 가치를 동시에 지닌 작품이다.

마치 지킬과 하이드처럼, 가장 비판적으로 해석되면서도, 여전히 가장 한국 관객들이 사랑하는 작품. 복잡한 의미와 상징들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같이 거머쥔 고전. 이 무대가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절대 하나만 꼽을 수는 없지만, 반드시 거론돼야 할 것 중 하나는 이 작품을 거쳐가며 지금의 틀과 토대를 만드는 데 기여한 위대한 배우들이다. 그리고 그 배우들의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영원한 '애기루시' 선민이다.

선민과 <지킬 앤 하이드>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2010~2011 시즌 <지킬 앤 하이드>로 데뷔한 그는 2012~2013 시즌에 이어 2021~2022년 8번째 시즌을 맡으며 루시로만 200회 무대에 오르는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이번 시즌 역시 훌륭하게 소화하며 자신의 네 번째 루시와 이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저는 이번 시즌 작품에 들어오면서 부담보다 기대가 더 컸던 것 같아요. '뭔가를 더 보여드려야 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 돼'라고 부담을 느끼기에는, 저는 아직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웃음) 대신에 이번 시즌 첫 공연부터, 최소한 지난 시즌 마지막 공연 때의 수준으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연습 기간이 있기는 하지만, 무대에 올라가서 필요한 적응 기간 같은 게 있고, 또 에너지에 따라서도 다르기 때문에, 그걸 최대한 첫 공연부터 가지고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는 시간들이 있었죠."

힘이 될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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