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마크
오마이뉴스
고용주들이 회의 열더니 총파업 지지 선언한 이유
2025-03-15 14:56:10
김종성
  • 페이스북으로 공유하기
  • 카카오톡으로 공유하기
  • 트위터로 공유하기
  • url 보내기

총파업이 일어나면 재벌기업을 편드는 세력이 시민 불편을 호소하는 여론전을 펼친다. 이것이 주효하면 여타 대중과 노동자가 분리되고 파업의 동력이 떨어지기 쉽다. 재벌과 지지세력은 총파업이 벌어지면 노동조합 못지않게 대중의 향배를 주시하며 그런 선전전을 전개한다.

그 방식이 초장부터 힘을 잃은 항일 총파업이 1927년 영흥 총파업이다. 이 지역 노동자들인 오영근·이영실·주경민·최여람 등이 앞장선 이 파업에서는 그것이 맥을 쓰지 못했다. 국가보훈부의 <독립운동사> 제10권은 이 사건을 1920년대 후반의 대표적인 노동쟁의 중 하나로 소개한다. 이 싸움은 사측에 대한 노동자의 승리이자 일제에 대한 한국 대중의 대표적 승리였다.

일제의 한국 착취로 궁극적 이익을 얻은 집단은 일본 군대나 경찰 혹은 정부가 아니라 일본 자본가들이다. 한국인 착취를 배후에서 추동한 세력은 그들이었고, 그 착취의 결과물은 주로 그들에게 들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군이 일본군을 격파하는 것보다는 한국 대중이 그 착취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 항일투쟁의 본령이었다.

오영근 등이 앞장선 함경남도의 영흥 총파업은 그런 승리의 기록이다. 보훈부가 영흥 총파업을 <노동운동사>가 아닌 <독립운동사>에서 다루는 것은 이것이 노동자의 승리인 동시에 한민족의 승리였기 때문이다.

강원도에 인접한 영흥은 석연이 많이 매장된 곳이었다. 1933년 8월 23일 자 <조선일보> '광업으로 본 함남'은 "지도를 펴노코 눈을 감은 채로 손끗이 닷는 곳을 파기만 하면 금 아니면 철 아니면 석탄, 무엇이던지 한가지 광(鑛)은 나올 모양"이라며 함남의 광물자원 부존량을 거론하는 대목에서 "영흥의 흑연"을 언급했다. 오늘날 석연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다. 영흥의 광업 노동자들은 지금으로 치면 첨단 광물을 캐는 생산자들이었다.

석연이 많이 생산되는 이곳을 일본 자본가들은 놓치지 않았다. 1992년 4월에 한국사회사학회가 <사회와 역사>에 실은 이준식의 '일제침략기 영흥지방의 노동운동'은 "영흥의 광산 가운데 대부분이 일본 자본에 의해 채굴"됐다며 "특히 흑연 광산에 일본 자본이 집중적으로 투자"됐다고 설명한다.

항의 파업 촉발시킨 집단 폭행


그곳에서 일하던 오영근 등이 역사적인 총파업에 나선 데는 일본인 직원의 한국인 폭행이 기폭제가 됐다. 1927년 9월 21일 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그달 14일 정오경이었다. 우차부(牛車夫)로 불리는 수송노동자 정봉준이 산하광업소 내의 다른 수송노동자와 말다툼을 했다.

전체 내용보기
주요뉴스
0포인트가 적립되었습니다.
로그인하시면
뉴스조회시 포인트를 얻을수 있습니다.
로그인하시겠습니까?
로그인하기 그냥볼래요
맨 위로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