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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하나도 반듯하게"... '50년 슈퍼' 이어가는 딸의 시간
2025-04-30 20:32:43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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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 전 충북 옥천 동이면 적하리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양복점 '젤라'와 슈퍼 '조흥상회'. 한 공간 안에 있던 양복점과 슈퍼는 고(故) 정구하, 이택우(84)씨 부부의 보금자리이자 일터였다. 부부가 함께 미싱과 바느질을 하며 손님을 맞던 이곳은 언제나 사람으로 북적였다. 조흥상회가 문을 열고 13년 후 당시 정구하씨의 건강 문제로 슈퍼만 남게 됐고 그때부터 '동원상회'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지금은 아픈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 정미옥(52)씨가 7년 전부터 가게를 지키고 있다. 줄을 잇는 손님으로 잠시라도 가게를 비울 수 없던 어린 시절과 달리 10여 년 전부터 눈에 띄게 손님이 줄어든 탓에 가게 운영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그. 부모님의 삶과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곳이기에 가게를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52년 세월이 담긴 동원상회 이야기를 정미옥씨에게서 들어봤다.

양복점 '젤라'와 슈퍼 '조흥상회'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이름, 'OO상회'. 미닫이문 안으로 보이는 내부 풍경만으로도 오래된 슈퍼의 시간이 느껴진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가지런히 정리된 진열대가 방문객을 맞고 곧이어 안쪽 공간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손님을 맞이한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곳을 7년 전부터 운영해 온 정미옥 씨다.

"아픈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대전에서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어쩔 수 없이 돌아왔지만 부모님께서 오랜 세월 운영해 온 곳이기도 하고 가게 구석구석 제 어렸을 적 추억이 담긴 곳이니까 이왕 하는 거 좋은 마음으로 하자고 다짐했죠."

동원상회는 정미옥씨가 태어난 1973년에 지어진 건물에서 조흥상회로 시작한 슈퍼다. 52년 된 가게는 부모님의 삶터이기도 하지만 그의 유년 시절이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것에 대한 기쁨보다 아쉬움이 더 컸던 그이지만 가게에 대한 애정이 고향에 남을 결심이 됐다.

"내부 공간과 간판이 바뀌긴 했지만 동원상회는 저와 동갑이에요. 이곳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생활했으니 저에게도 남다른 장소죠. 특히 아버지와의 추억이 많은 곳이에요."


육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돈독했기에 함께한 시간이 많다. 양복점 재단사로 늘 미싱을 돌리던 아버지 곁에 앉아 책도 읽고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조흥상회는 어머니가 운영한 슈퍼였는데요. 가운데에 가벽을 세워 한쪽을 양복점 '젤라'로 단장했죠. 아버지 솜씨가 좋아 슈퍼보단 양복점 찾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어머니도 아버지를 도와 단추를 달면서 슈퍼를 보셨죠. 저는 젤라에서 아버지 말동무를 해드렸고요(웃음)."

가벽을 넘나들며 가족이 함께 한 지붕 두 가게를 운영했다. 13여 년 후 아버지 고 정구하씨의 건강 문제로 양복점을 접으면서 지금의 슈퍼도 공간을 재정비했다. 양복점 손님이 곧 슈퍼 손님이었기에, 가게를 찾는 이들도 점차 줄었다. 슈퍼만으론 생계유지가 어려웠던 그의 양친은 농사일을 겸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옥천장으로 채소류를 팔러 다니셨고 아버지는 포도농사를 지으셨죠. 돌아가면서 슈퍼를 보셨는데 정말 바쁘셨어요. 슈퍼 물건 떼러 가는 날이면 대전에 가야 했기 때문에 종일 시간을 비워 두셔야 했고요."

가게 물건이 떨어질 때마다 대전으로 나섰던 어머니 이택우씨는 그 당시를 회상하면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온다. 동이면에서 옥천읍까지, 다시 옥천읍에서 대전까지 여러 물건이 담긴 상자를 머리에 이고 먼 거리를 홀로 다녔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전화 한 통이면 물건을 가져다주지만 예전에 그런 게 어딨어. 직접 가야 했지. 시간을 내서 가야 했으니까 한두 가지만 떼 올 수 없잖아. 비누, 장갑, 과자 여러 물건을 많이 떼다 보니 두 상자는 기본이었지. 아이고, 고생 많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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