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자유학교 아이들은 초등 1학년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해보는 것을 시작으로 스스로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고 자연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들살이'를 1년에 두 번씩 한다. 그렇게 12학년(고3)까지 들살이는 다양한 꼴로 펼쳐진다.
특히 6학년의 중요한 과업은 12일간의 제주 도보 들살이(여행)다. 들살이를 전후하여 교실에서는 '제주'라는 키워드를 과학, 사회, 역사, 음악 등의 과목에서 배운다. 제주 땅의 구조와 지형, 4.3, 제주 문학과 문화 등으로 풀어내고 엮어낸다. 아이들은 그 배움을 들살이를 통해 교실 밖에서 자신의 두 발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담아낸다. 또한 스스로 세 끼를 해 먹으며 제주 한 바퀴를 돌면서 자신의 한계를 만나는 도전과 극복 속에 용기와 인내, 성취감을 얻는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아이들에게 제주 들살이의 추억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남아 때때로 곶감 빼먹는 달달함을 줄 터, 오늘 나도 지난해 만들어진 그 곶감을 하나 빼 먹어보려 한다.
[길 위에서의 배움①]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배운다
#들살이 2일차_한참 국도를 걷다가 멋진 바다 풍경을 기대하며 아이들을 올레길로 안내했다. 꼬불꼬불 골목길을 한참 들어갔다.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데 공사로 그 길이 막혀 있었다. 왔던 길을 돌아가 다시 걸어야 했다. 허탈함에 한숨을 쉬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미안함에 할 말을 잃었다. 혹시 갈 수 있는 길이 있을지 조금 더 내려갔다 돌아왔는데 아이들은 그새 신나 있었다. 암벽 등반 하듯 돌 언덕을 오르고 언덕 위에서 솔방울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언덕에 올라가니 바닷바람이 정말 시원했다. 길이 막힌 김에 쉬며 도시락을 먹었다.
#들살이 4일차_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오전 내내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가 그쳤다가 쏟아지기를 반복했다. 12kg 배낭 위로 비옷을 입고 25km를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두두두 떨어지는 비는 '함께'이기에 낭만적이었다. 꿉꿉함이 그 낭만마저 밀어내려 할 때쯤 다행히 해가 났다. 햇살 아래 아이들은 오늘 저녁 메뉴인 떡볶이 이야기를 꺼냈다.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어떤 조리법을 준비해왔는지, 떡볶이 먹을 생각하면 힘이 나서 걸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숙소 가는 길의 마지막 마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검색했을 때 '영업중'으로 떴던 그 마트는 굳게 닫혀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른 마트를 가려면 8km를 돌아가야 했다. 10시간을 걸었으나 떡볶이 재료 없이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둥글게 앉아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가방에 넣고 다니던 짜장가루를 꺼내 끓였다. 건더기는 없지만 그래도 짜장가루와 쌀을 메고 다녀 다행이라고, 그리고 하물며 너무 맛있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 고춧가루를 뿌려 반찬을 대신하며 싹싹 다 먹었다.
그 후 아이들은 그 당시 유행하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라는 노래를 개사해 부르며 깔깔거리며 걸었다.
'제주도는 너무 어려워~♪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교실에서는 교사가 배움의 많은 부분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만난다. 그것은 당위적이고 필수적이다. 그런데 교사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더 큰 배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 교사로서는 정말 짜릿하다.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들살이에서는 돌발상황이 반드시 생긴다. 계획에 없던 일을 만났을 때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어떤 때는 교사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도를 찾아낸다. 어떤 때는 이런 일은 별거 아니라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교사의 걱정을 허공으로 날려버린다. 흔히 말하는 문제해결능력, 상황대처능력, 유연성 같은 것들이 아이들에게 쌓인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어있다. 그 빛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으니 어찌 짜릿함이 없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