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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 연등 밝힌 무등산의 불교도량, 이건 직접 봐야 하는데요
2025-05-04 18:42:23
임영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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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9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전국의 사찰 안팎에 오색 연등이 걸렸다. 등불을 밝힌다는 뜻의 '연등(燃燈) 의례'는 석가모니 시대에 이곳저곳을 다니며 깨달음을 전하는 부처님에게 올리는 공양물의 하나로 등불을 밝혀 놓았던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부처님의 전생담을 기록하고 있는 현우경(賢愚經)의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 나오는 유명한 '빈자일등(貧者一燈)' 즉 '가난한 사람이 부처님에게 바치는 등불 하나'의 이야기다. 옛날 코살라국의 사위성(舍衛城)에 난타(難陀)라는 아주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구걸로 연명할 정도로 가난했다. 어느 날 부처님이 사위성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왕과 백성들은 등불공양(供養)을 올리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난타도 등불공양을 하기 위해 하루 종일 거리에서 구걸해 얻은 동전 두 닢을 들고 기름집으로 갔다. 기름집 주인은 난타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해 기름을 두 배로 주었다. 난타는 등불 하나를 밝혀 부처님께 바쳤다.

밤이 깊어 가고 새벽이 다가오며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왕과 귀족들이 밝힌 호화로운 등불은 다 꺼졌으나 유독 난타의 등불만은 밝게 빛나며 주위를 밝혔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이 잠을 청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제자 아난은 등을 끄려 했다.


그런데 등불은 꺼지지 않고 더욱 밝게 빛났다. 이를 바라보던 부처는 아난에게 말했다. "가난하지만 착한 여인의 성원(聲援)과 정성(精誠)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등불의 공덕(功德)으로 이 여인은 반드시 성불(成佛)할 것이다." 그러면서 부처님은 난타를 비구니로 받아들였다.

광주 무등산은 불교 경전에 나오는 '무등등(無等等), 무유등등(無有等等)'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는 곧 부처님이 상주하고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1530년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佛宇條)에 따르면 광주의 사찰 10개 중 7개가 무등산에 건립된 것으로 나와 있다. 예로부터 수많은 사찰을 품고 있는 무등산은 광주 불교의 요람이라 할 수 있다.

아기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일제히 오색 연등을 밝히고 있는 무등산의 대표적 불교 도량 몇 곳을 둘러본다.

마음(心)을 증득(證得)하여 깨달음을 얻는 '증심사'


"광주 사람들은 증심사라는 사찰은 잘 몰라도 '증심사'라는 지역명은 잘 알고 있죠. 참 이상하죠? 증심사를 그냥 무등산으로 알고 있어요."

증심사 주지 중헌 스님의 말이다. 맞다. 광주와 무등산 그리고 증심사. 셋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서로 하나로 얽혀 있다. 무등산과 증심사는 광주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마음(心)을 증득(證得)하여 깨달음을 얻는 곳. 증심사는 무등산의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무등산 산행객의 약 70%는 증심사 입구를 거친다.

증심사는 9세기 중엽 신라 헌안왕 4년(860)에 철감선사 도윤 스님(798~868)이 창건했다. 그 뒤 고려 선종 11년(1094) 혜조국사가 중창했으며 조선 세종 25년 (1443)에 전라도 관찰사 김방(金倣)의 시주로 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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