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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사실조차 알 수 없는 이 남자의 '거사'
2024-11-14 21:08:30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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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5일 의열단 김종철(金鍾喆) 지사를 기리는 공적비가 경북 경주시 양북면 복지회관에 세워졌다. 그가 타계한 1941년을 기준으로 치면 78년 만의 일이다. 의열단으로 활동했던 치열한 독립운동가 공적비 하나를 세우는 데 그토록 오랜 세월이 필요한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관련 기사: 경주 유일 의열단원 김종철 지사 공적비 건립... 15일 제막식 https://omn.kr/1lmok ).

김 지사는 1888년 12월 12일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450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세상을 떠난 월일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31세이던 1919년 3.1독립운동을 겪은 후 만주로 망명해 송두환·최해규 등과 함께 임시정부 산하 조직인 의용단(義勇團)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임시정부에서 활동 중 군자금 모금차 밀입국

그후 군자금 모금차 국내로 돌아온 그는 1920년 12월 6일 김봉규와 함께 경남 일대에서 활동했다. 이때 합천 부호 정달락, 의령 부호 남정구 등에게 군자금을 요구하다가 남정구의 계략에 빠져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연행돼 가던 중 일본인 순사 갑비(甲斐)를 사살하고 조선인 순사 손기수(孫騏秀)에게 중상을 입히고 만주로 탈출했다. 그후 상해로 가서 김원봉·이종암 등이 조직한 의열단(義烈團)에 입단해 1928년까지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사망한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도 확인되고 있지 않(독립기념관 독립운동 인명사전)"는 상태에 놓여 있다. 고향에 공적비가 2019년 11월 15일 건립됐지만 (그로부터 5년 가까이 경과한 2024년 11월 15일 현재까지도) 국가보훈부 현충시설정보서비스는 밀양 의열기념관만 소개하고 있다.

사망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조차 없는 의열단원

김종철 지사 관련 많이 알려진 일화인 '갑비 사건'을 독자들에게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그를 조금이나마 더 현창하려 한다. 시점은 의열단 이종암이 경남 밀양에 잠입해 최수봉 지사의 밀양경찰서 투탄 의거를 추진하고 있던 1920년 12월이다(기자 주).

12월 8일 경남 의령군 유곡면 칠곡리에서 일본 순사 가이(甲斐)가 살해당했다. 관헌 500명이 범인 색출에 동원된 경남 서부 지역은 그 사건으로 난리법석이라는 소식이 밀양까지 전해졌다.

"가이를 처단한 의사가 의열단 단원이오?"

최수봉이 그렇게 물었을 때 이종암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의열단 계획에 의령 순사 가이를 처단한다는 것은 세워진 바 없었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 말이었다.

"일본 순사를 권총으로 처단했다는 소문을 보면 그는 틀림없이 독립지사요. 아마도 머잖아 의열단으로 찾아올 겁니다. 그보다도 지금은 우리에게 때가 왔다는 것이오. 경남 경찰들이 의령에 잔뜩 신경을 집중하고 있으니 그만큼 밀양 경찰서는 허술해질 것이 틀림없소. 거사일을 확정해야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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